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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먹어서?…'K' 붙으면 잘 나간다, 그런데 답답한 K푸드

2013년 미국에서 시작한 한국식 덮밥 '컵밥(CUPBOP)' 매장은 특별한 마케팅도 하지 않지만 입소문을 타고 오픈 때 마다 현지인들이 찾아와 줄을 서는 매장이 됐다. 사진 송정훈 컵밥 대표 제공
“지난달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한 시간 거리의 시골에 60번째 ‘컵밥’ 매장을 열었습니다. 테이블 5개짜리 작은 식당에 광고도 안 했는데 개업 첫날 2300명이 다녀 갔어요.”

2013년부터 미국에서 한국식 바비큐 덮밥집 ‘CUPBOP(컵밥)’을 운영하는 송정훈 유타컵밥 대표는 최근 K푸드 인기를 실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K푸드의 미래에 대해선 우려했다. “많은 미국인이 K드라마·K무비를 보고 한국 음식을 찾고 있지만, ‘K’라는 수식어에 빠져 한국이 폭죽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것 아닌가 싶어요. 첫 타석에서 예상치 않게 홈런을 쳤지만, 선구안·장비·체력 보강 없이 다음 타석에서도 잘할지 걱정스럽다는 거죠.” K푸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산업으로 자리잡으려면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사상 최대 매출 찍었는데, 현장선 “답답”
현재까지 K푸드의 성적표는 화려하다. 초코파이·신라면 같은 ‘원조 스테디셀러’에 만두·냉동김밥·불닭볶음면 등 ‘블록버스터’가 잇따르고 있다. K푸드의 범주가 한국인들의 일상 음식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식품 기업들의 수출 실적도 분기마 경신 중이다.

특히, 불닭볶음면을 내놓은 삼양식품은 지난 1분기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 3857억원, 영업이익 80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7%, 235% 증가했다. 전체 매출의 70%가량이 불닭볶음면에서 나왔다. 삼양식품의 지난 20일 기준 시가총액은 3조9172억원으로 1년 전 8136억원에서 5배가량 늘었다. 롯데웰푸드·대상·CJ제일제당 역시 해외사업 호조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00.6%, 91.5%, 77.5% 증가했다. 고금리로 주요 수출 기업들이 고전하는 가운데 식품업계만 나홀로 호황이다.
김주원 기자
그러나 전문가들은 K푸드가 현재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본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식품업체들이 해외 진출과 BTS·오징어게임·기생충의 인기가 맞아떨어진 우연의 결과물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김숙진 CJ제일제당 경영리더는 “한국 사람들이 피자나 중식을 일주일에 한두 번 먹듯 주식(主食)으로 침투하는 단계까지 가야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고 시장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K푸드가 ‘열풍’ 수준에 그칠지, 산업으로 발전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앤컴퍼니는 지난해 말 발간한 ‘코리아리포트’에서 “K팝·K뷰티 등 문화적 메가 트렌드가 존재하지만 국내 소비재 기업 중 글로벌 입지를 유의미하게 확보한 사례는 제한적”이라고 꼬집었다. 세계 시장점유율 상위 150개 식품 브랜드 중 한국 브랜드는 2개에 불과했다.
미국 소녀 아달린 소피아가 생일 선물로 까르보불닭볶음면을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 뉴욕타임스는 미국 텍사스에 사는 이 소녀의 ‘틱톡’ 영상이 큰 화제를 일으켰다며 불닭볶음면의 인기를 전했다. 기사는 K푸드에 대해 “카메라 앞에서 정말 멋져 보인다”고 소개했지만, 한 독자는 “카메라 앞에서 멋져 보이는 게 (K푸드의) 전부”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사진 틱톡 캡처
중앙일보가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의뢰해 지난해 세계 식품 업체들의 판매액 순위를 조사한 결과, 라면 시장에서 농심은 팅신(대만), 닛신(일본), 인도푸드(인도네시아), 도요수산(일본)에 이어 5위였다. 2018년 6위에서 한 계단 오른 순위다. 오뚜기·삼양·팔도는 각각 14위, 21위, 24위로 나타났다. 냉동만두·냉동밥 등 글로벌 냉동 즉석식품 시장에서는 CJ제일제당이 6위로 선전했다. 풀무원은 2018년 45위에서 상승했지만 아직은 30위권(38위)이다. 절임야채류 시장에서는 김치를 내세운 대상과 CJ제일제당이 각각 11위, 12위다.
김주원 기자
문경선 유로모니터 한국리서치 총괄매니저는 “국내 업체들의 최근 5년 성장률이 글로벌 상위권 식품업체들보다 높은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점유율 자체가 미미해 현지인이 일반 음식으로 인지할 만큼 산업화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에서 ‘K’가 붙으면 잘 팔리지만 K콘텐트의 인기 영향인지, 제품 자체 때문인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갈비 같은 요리가 아니라 아이돌이 먹고,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노출되는 만두·치킨·김밥 같은 제품이 주로 소비되고 있다”며 “K푸드는 일본 음식처럼 문화를 얹어 고급화로 갈 것이냐, 중국 음식처럼 중저가로 접근성 좋게 갈 것이냐 기로에 섰다”고 분석했다.

우연 아닌 실력으로 ‘롱런’하려면
최근엔 K푸드가 ‘롱런’할 수 있도록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송정훈 대표는 “최근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면서 K푸드 식재료나 식기구 유통이 마비됐다”며“이대로라면 몇년 뒤엔 인기가 시들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K플래버(맛)’에 올라탄 일부 중국인이 씹지도 못할 만큼 질긴 떡볶이나 양배추 김치를 K푸드로 판매하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했다.

김숙진 경영리더는 “이제는 K푸드를 표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며 “일본은 해외에서 일식당을 차리면 메뉴, 조리법부터 면, 양념, 수저, 접시까지 공급하는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이 크다”고 말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 역시 “정부가 물가안정 간담회를 할 게 아니라 글로벌 진출 지원책을 논의할 때”라며 “이슬람 문화권의 ‘할랄 인증’ 등 문화적 특성에 따른 규제를 한국 식품 기업들이 넘어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은경.이수정.김경미(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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