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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 달콤한, 그러나 치명적인 ‘다수의 유혹’

최훈 주필
자고 나면 ‘특검’ ‘탄핵’ ‘거부권’뿐인 정치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장관·검사들에 대한 새 국회의 일상적·적극적 탄핵”도 예고했다. “채 상병 특검 거부 등 탄핵의 방향으로 기름을 부어 온 건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라는 게 야당의 자기합리화다. 물론 정권의 독선적 태도, 법 집행의 형평성에 결코 믿음을 받지 못해온 검찰 등이 이 분란의 원인을 제공해 온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통치다. “그나마 가장 덜 나쁜 제도”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역시 “윤석열도 미덥지 않지만 그래도 이재명보다는 낫겠다”가 0.73% 차의 다수였다. 지금 윤 대통령의 ‘고난’은 0.73%를 되새겨 포용과 겸손, 소통과 경청을 하지 못해 온 탓이다. 역으로 소수를 존중하고, 다수의 독주가 낳을 해악 역시 막아야 하는 게 민주주의다. 대통령의 전횡을 막으려 의회엔 인사청문회, 총리·장관 해임건의안, 국정감·조사, 탄핵소추 권한을 주었다. 거꾸로 의회 다수의 횡포를 막으라고 대통령에겐 법안 거부권, 예산 편성권 및 (의회의) 예산 증액에 대한 동의권을 갖게 했다.

특검·탄핵·거부권 갈등뿐인 정국
민주당, 일상·적극적 탄핵 예고도
이재명의 미래, 다수 급발진보다
국가 난제 해결 의정 성과에 달려

서로를 견제토록 이리 못박아 놓은 건 그것이 ‘극히 예외적 상황’에서 사용되길 바랐다는 게 상식적이다. 불났을 때만 깨트리라는 소방벨처럼 말이다. 가능하면 그럴 일 없도록 잘 지내라는 기대 아니겠는가. ‘국민 다수’가 앉힌 대통령을 ‘의회 다수’가 몰아내는 건 가장 중대 사건이다. 명백·엄중한 사유여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손쉽게 탄핵하려던 다수는 분노의 역풍을 맞았다.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최종 결론내라고 2중 안전 장치까지 걸어둔 이유다.

건국 248년의 미국은 3명(앤드루 존슨,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의 대통령만 탄핵에 직면했다. 실제 탄핵된 이는 없었다. 한 세기에 한 번꼴의 시도였다. 반면에 페루에선 ‘도덕적 무능’을 탄핵 기준의 하나로 헌법에 넣어 재앙을 불렀다. 2022년까지 4년간 3명의 대통령이 ‘도덕적 무능’으로 의회 다수에 쫓겨났다. 태국 역시 탁신 총리가 군부에 밀려난 뒤 그의 최측근·매제·여동생 3명의 후임 총리들이 군부가 장악한 헌재에 의해 밀려났다. 그중 최측근이던 사막 순타라웻 총리는 취임 뒤 TV 요리 프로에 나가 네 차례 500달러씩 출연료를 받았다가 ‘(겸직 금지) 헌법 위반’으로 쫓겨났다. 정치가 ‘대통령·총리 사냥터’로 바뀌니 당시 그 나라 꼴은 살펴볼 필요도 없겠다.



특검 역시 문제적 이슈다. 대통령·법무장관 등 행정부가 아니라 대법원 쪽에서 지명, 상원 인준을 받는 원래의 특검법은 미국에서도 시행 21년 만(1999년)에 폐기됐다. 공정을 넘어 무차별 먼지털이로 국가 분열만 가중시킨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4000만 달러를 쓴 클린턴 특검이 밝혀낸 건 르윈스키와의 밀회”뿐이란 여론이 결정적이었다. 미 변협의 강력한 폐지 권고에 미 의회 역시 “역기능이 더 크다”며 동의했다.

미국이 폐기한 그 해에 특검법을 좇아간 우리의 특검은 25년간 14차례. 21년 동안 18건이던 미국과의 나라 크기로 볼 때 잦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옷로비 특검이 밝힌 건 앙드레 김의 고향·본명이 구파발 김봉남인 것뿐”이란 조소로 시작, BBK 특검은 ‘맹탕 특검’의 대명사가 됐다. 수사 중 5명이 목숨을 끊은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역시 최근 무죄 판결들이 이어지며 “과도했던 정치 보복” 논란을 벗어나지 못한다. ‘드루킹 특검’ 정도가 성과의 기억일 뿐이다.

의문은 다수 민주당의 급발진 공세의 의도다. 대권이 남은 목표일 이재명 대표는 여전히 사법 리스크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운명 공동체인 주변에선 “대선은 빠를수록 좋다”는 충성 경쟁도 감지된다. ‘반독재 투쟁’ 말만 들으면 엔돌핀이 나오는 당내 86세대의 기억과 기질도 작동했을 터다. 젊은 시절의 ‘반전두환’처럼 주동(主動)의 공격·폭력성이 강할수록, 반동(反動)인 자신들도 그래야 이길 수 있다는 ‘중력의 법칙’이 DNA에 남은 그들이다. 그러니 ‘윤석열 검찰독재 타도’야말로 당내 잡음을 진압하고, ‘이재명 대권’의 단일대오를 유지해 줄 만병통치약이다. 특검과 탄핵. 그들의 최종병기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엔 그러나 심각한 착시(錯視)가 있다. ‘다음 대선에 윤석열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용산과 여의도에 잘해 보라며 권력을 나눠 준 게 국민이다. 그러나 특검·탄핵으로 치고받고 날 새워 나라를 수렁에 빠트리면, 그 책임 물을 남은 이는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이재명뿐이다. 다음 대선의 새 경쟁 주자들은 닭이 울기 전, 안 그래도 비호감 1·2위인 윤석열·이재명 둘 다를 세번 부인하며 맹공할 것이다. 이재명의 적은 과연 윤석열일까, 국정의 난제들일까.

단순한 구호와 선악 이분의 ‘쉬운 투쟁’만으론 문제 해결이 턱도 없는 복잡계 시대다. 불평등 해소, 약자 보호 복지라는 진보 본연의 사명을 토대로 의정 성과와 수권 능력을 인정받는 게 ‘이재명의 미래’를 보장할 외길이다. 달콤한 ‘다수의 유혹’. 가장 경계해야 할 그의 치명적 독배는 바로 그것이다.



최훈(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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