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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결혼준비, 불의와 타협하기

정진호 경제부 기자
‘드레스 투어’를 했다. 드레스숍 3~4곳을 시간대별로 예약하고, 한 곳당 1시간여를 머물며 드레스를 입어본다. 100만원이 넘는 드레스를 대여하기 위해선 이 과정이 필수인데, 옷 입어보는 비용인 피팅비를 따로 내야 한다. 피팅비는 통상 업체당 5만원이다. 업체에서 보낸 체크리스트엔 이렇게 쓰여 있다. “피팅비는 봉투에 넣어 준비해주세요.” 감사를 표하듯 봉투에 담아 현금으로 줘야 한다.

투어가 끝나고 그날 입어본 10여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골라야 하는데 결정이 쉽지 않다. 드레스 입은 사진은 촬영이 금지돼서다. 물어보면 하나같이 “디자인 유출을 막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대는데, 이미 웨딩 잡지나 인스타그램엔 모델이 입은 드레스가 모두 공개돼 있다. 추측건대 모델이 아닌 일반인이 입은 (안 예쁜) 드레스 사진이 외부에 공개되는 걸 막으려는 목적이다. 이 때문에 드레스 피팅 땐 예비신랑이 노트에 그림을 그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웨딩타운 웨딩드레스 전문점.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뉴스1]
결혼식 준비에서 꼭 거치는 과정을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로 부른다. 스튜디오에서도 비상식적 관행이 한둘이 아니다. 웨딩사진 촬영 당일엔 사진작가에게 줄 간식까지 챙겨야 한다. 정성 어린 장식까지 더한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엔 “100만원 가까이 내고 스튜디오 예약했는데 원본 사진을 받으려면 44만원을 또 내야 한다더라. 거기에 앨범과 액자는 배송비를 따로 받는다” 같은 성토가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온다.

수백만~수천만 원의 돈을 내고도 아무 말도 못 하는 을이 돼버린다. 정보 비대칭이 극심한 탓이다. 가격이 공개돼있지 않다 보니 비교할 수가 없다. 예식장만 해도 언제 예약하느냐, 어떤 웨딩플래너를 끼느냐 등 예약 방식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정가 개념이 없다. 쿠팡, 알리, 이마트 등 각각 표시된 가격을 보고 비교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상품과 다르다. 그러다 보니 중간중간 요청하는 추가 요금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한 번뿐인 결혼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작용한다. 드레스나 메이크업 모두 전문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불합리에 맞섰다가는 돈 내고도 서비스를 못 받을 수 있다는 공포다. 결론은 불의와의 타협이다. 결혼을 여러 번 하지 않다 보니 재방문을 끌어낼 필요가 없는 사업 구조도 한몫한다. 가격 대비 맛이 떨어지고 서비스까지 별로인 식당은 다시 오는 사람이 없어 망하지만, 예식 준비는 보통 2번 하지 않는다.

한국의 결혼 시장이 이렇게 된 지는 오래다. 이미 혼인을 마친 소비자는 이를 바꾸는 데 시간을 들일 유인이 없다. 혼인 건수도, 출생아 수도 계속 떨어져 왔는데 그사이 정부는 손을 놓았다. 대부분의 업체가 ‘결혼식 갑질’을 공유하는 담합을 하는데도.





정진호(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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