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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사람들

문 전 대통령의 '멘탈 갑' 어이없어
우리 사회 퍼진 눈치·염치 불감증
후진 정치·연예인 '국민지도' 필요
김현기 논설위원
#1 라인야후 사태를 "일본에 뒤통수 맞았다"고 보는 시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먼저 틀린 점. 어쨌든 이번 사태는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51만여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데서 비롯됐다. 처음부터 일본 총무성의 음모하에 착착 진행된 게 아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2021년에도 유사한 정보 유출 구멍이 발견됐다. 당시에도 일 총무성은 라인야후에 '행정지도'를 내렸다. 일 총무성 입장에선 이제 개선됐겠지 했는데, 또 이런 일이 터지니 자신들이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반대로 일본의 야욕에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 비판한다. 일 정부가 열받아 내친김에 이례적인 '자본관계 재검토'까지 엮어 넣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사태의 앞뒤는 제대로 분간할 필요가 있다.

이데자와 다케시(出澤剛) 일본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일본 소프트뱅크와 절반씩 지분을 나눠 가진 네이버에 대한 자본 변경 요청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EPA=연합뉴스

그렇다면 맞는 점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네이버의 뒤통수를 쳤다는 점이다. 난 이데자와 라인야후 최고경영자의 다음 발언에 이번 사태의 본질이 응축돼 있다고 본다.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 지분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이 대전제다. 손 마사요시(손정의 일본명) 회장도 '이번 건은 중대한 사태이니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정의의 라인 접수 장기 전략은 교묘하고 은밀했다. 손정의는 돈을 우선하는 일본인이지, 뿌리를 우선하는 한국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웬걸, "손정의는 한국 편"이라 접고 들어간다. 사태의 책임을 손정의 아닌 일 정부 탓으로만 몬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착각이다. 거기서 부조화가 일어났다.

손 회장의 최측근인 오쓰키 전 비서실장이 최근 한 주간지에 털어놓은 에피소드는 인상적이다. "모시는 동안 손 회장이 가장 기뻐했던 때는 언제였나"(질문자), "(손정의 회장이) 일본 국적을 취득했을 때다. 국적을 취득하고 막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의 환한 미소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오쓰키). 손 회장을 일부러 나쁘게 볼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정말 봐야 할 것, 착각해선 안 되는 것이 뭔지를 시사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중앙포토

#2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이의 전형을 정치 쪽에서 보여준 게 얼마 전 나온 문재인 전 대통령의 외교 회고록이다.

몇 가지만 열거한다. 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예의 바르고 존중이 몸에 뱄다. ② 김 위원장이 연평도 포격전으로 고통받은 주민을 위로하고 싶다고 밝혔다. 놀라웠다. ③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진심이었다. 김 위원장이 "딸이 머리에 핵을 이고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④ 유엔의 대북제재가 남북관계 개선에 '애로' '장벽'이 됐다. 답답하고 아쉽고 화도 난다. ⑤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 단독 방문은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다.

하나하나 모두가 충격적이고 아찔하다. 이 분은 과연 어디를 보고 이 나라를 다스렸단 말인가. 각각의 항목에 이렇게 묻는다. ① 고모부를 처형하고, 이복형을 독살하고, 우리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람에게 '예의' '존중'이 맞는 표현일까. ② 포격 주범(김정은)에게 연평도 포격에 대한 항의는 한마디라도 했는가. ③ 열 살배기 딸을 미사일 시험발사장으로 열심히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④ 거꾸로 자신의 북한 집착이 북한의 비핵화에 애로와 장벽이 됐다고는 생각지 않나. ⑤ 그냥 부인 자랑은 집에서만 단독으로 하시면 안 되는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우리 사회엔 정말 이런 '멘털 갑'이 많다. 말이 좋아 그렇지 철면피, 후안무치다. 음주운전에, 뺑소니에, 증거인멸까지 한 트로트 가수는 공연 위약금을 걱정하며 관객 앞에 계속 선다고 한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의 몰상식이 이를 부추긴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정치권도 다를 게 없다.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자숙하기는커녕 한 달 조금 지나 "민심이 원한다"며 스멀스멀 재등장할 타이밍만 엿보는 정치인도 있다. 참으로 후졌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제 우리 국민도 그런 눈치도, 염치도 없는 이들에게 따끔한 '국민 지도'를 내보일 때가 됐다.



김현기(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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