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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홍의 시선] 전직 대통령 회고록 사용법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근 『변방에서 중심으로』(부제 ‘문재인 회고록: 외교안보 편’)를 펴냈다. 문 전 대통령은 서문에서 집권 기간 어떤 구상으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외교·국방·보훈·방산 정책을 다뤘었는지 말하고 싶었다고 적었다.

회고록은 정부·여당과 보수 진영의 반발을 불러왔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은 철저하게 자기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사용할 생각 전혀 없다”며 비핵화 의지를 누누이 강조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말만 믿고 비핵화 협상에서 동맹인 미국보다 북한의 입장을 옹호한 건 지도자로서 순진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능력을 무시한 채 북한의 의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세를 오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회고록이 정치권 논란으로 번져
“역대 최고” 등 자화자찬 많지만
외교 현장 경험 경청할 대목 있어

북한은 과거 비핵화 협상 중에도 비밀리에 핵 개발에 나선 전력이 있다. 북한은 체제 유지의 ‘보검’으로 핵을 내세운다. 북한의 핵은 대외적으로는 협상의 수단이지만 대내적으로는 체제 유지와 권력 공고화의 수단이다. 북한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데도 포기하지 않았던 핵을 국제 제재 완화와 쉽사리 교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

문 전 대통령은 강제징용 사태와 관련한 일본의 태도에 대해선 “속 좁은 모습”, “추락하는 나라” 등으로 비판했다. 문 전 대통령이 이 문제에서 일본과 대립했고,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태도에 불만이 컸겠지만, 대북 억제 등을 위해 한·미·일 협력의 한 축인 일본을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건 도가 지나쳤다.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내놓은 ‘제3자 대위변제안’도 “굴복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문 정부 시절 한·일 관계는 최악의 수준이었다.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문 정부는 그해 8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하고 이를 일본에 통보했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국들을 규합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핵심 동맹국 한국과 일본의 관계 악화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관계 악화는 한·미 동맹과 한국의 대외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 문 전 대통령이 윤 정부의 치적이랄 수 있는 한·일 관계 개선을 폄훼하는 건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국제사회의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상을 정상화로 돌리는 과정이었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찾아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읽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안이하다. 회고록에는 현 정부가 경청할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무력으로 대만해협 현상을 변경하는 데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발언이 보도된 뒤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며 한·중 관계가 얼어붙었다. 이와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은 “미·중 양쪽을 다 배려하는 외교적 표현을 할 수 있다”며 “외교라는 면에서 현명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한국에 중국은 경제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중요한 나라다.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를 언급할 때는 조심하고 외교적 수사를 쓰는 게 바람직하다. 대통령이 발언의 파장을 인식하고 자제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설사 이런 발언이 나왔더라도 참모들이 사태를 보다 유연하게 수습했어야 했다.

미·일과의 관계와 함께 북·중·러와의 외교도 균형 있게 해야 한다는 문 전 대통령의 지적도 옳다. 윤 정부 들어 미·일과의 외교에 치중하면서 북·중·러와의 관계가 크게 나빠졌다. 이는 한반도 평화와 한국의 외교 입지를 악화시켰다. 윤 정부가 이제라도 북·중·러와의 관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회고록에는 “우리 정부는 균형외교에서 역대 최고의 성과를 냈다”는 등 자화자찬하는 내용이 많지만, 전임 국정 최고책임자가 외교안보 현장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사태를 풀어나갔는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료다. 논란 속의 문 전 대통령 회고록이 윤 정부의 외교 정책을 돌아보고 대외 전략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정재홍(hong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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