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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정치' 유령이 배회하는 유럽…분열 심화하며 폭력 낳아

우크라 전쟁·이민 급증 등 둘러싸고 갈등 첨예해져 분열 심화

'극단 정치' 유령이 배회하는 유럽…분열 심화하며 폭력 낳아
우크라 전쟁·이민 급증 등 둘러싸고 갈등 첨예해져 분열 심화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지난 15일(현지시간)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피습의 배경에는 양극단으로 흐르는 유럽의 정치 상황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CNN방송 등은 현재 유럽이 매우 위험할 정도로 분열됐으며 슬로바키아 총리 피격 사건이 이를 분명히 드러낸다고 보도했다.
유럽에서 국가 지도자를 겨냥한 공격이 일어난 것은 지난 2003년 조란 진치치 세르비아 총리 암살 이후 이번이 근 20년 만이다.
이들 매체는 오랜 기간 국가 지도자 암살 시도와 같은 폭력이 발생하지 않았던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민자 급증, 포퓰리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이 대륙을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슬로바키아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 정치는 이민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자와, 반(反)이민 목소리를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자유주의자들로 극명히 갈라져 있다.


NYT는 이러한 정치 세계에서는 반대세력이 아니라 적이 존재할 뿐이며, 폭력까지 사용해 적을 공격하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최근 수년 사이에 나타난 유럽 정치적 분열의 주 원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꼽힌다.
비록 유럽연합(EU)의 밖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이 전쟁은 EU 국가들 내에서 자유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 정치적 논쟁에 불을 붙였다.
러시아의 진격과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크라이나군 훈련 지원을 위한 파병 검토 등 일련의 사태는 언제든 확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피초 총리에 대한 총격 사건이 이런 일련의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전역의 민족주의자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반동적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고 있어 유럽의 분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같은 유럽의 민족주의자들은 서구의 엘리트 자유주의자들을 교회, 국가, 가족 그리고 결혼과 성에 대한 다른 전통적인 관념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 묘사한다.

피초 총리도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우크라 지원을 반대하고 러시아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친러시아 성향으로 평가된다. 이민과 동성 결혼, 동성 커플에도 반대해왔다.
유럽으로 급격하게 이민자가 유입된 요인도 극단의 정치를 심화시켰다.
지난 2022년에는 전년의 두 배 이상인 510만명의 이민자가 EU로 들어오고 여러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서 반이민 정서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민자 급증은 포퓰리즘을 이용한 극우 정당이 부상하는 기회도 만들어줬다. 독일 등에서는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극우 정당이 득세했다.
분열된 정치로 인한 폭력은 슬로바키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 4일 독일에서는 드레스덴 시내에서 선거 포스터를 붙이던 사회민주당(SPD) 소속 유럽의회 의원 마티아스 에케가 괴한 4명에게 공격받아 중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다.
그 이틀 전에는 독일 서부 에센에서 연방하원의원 카이 게링과 녹색당 동료 정치인 롤프 플리스가 당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괴한에게 폭행당했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카롤리나 비구라는 피초 총리의 총격 사건이 유럽의 정치적 충돌 지형에서 중간 지대가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비구라는 "내가 한 행동이나 말 때문에 정신적, 언어적, 물리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라며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완전히 다르게 보거나 정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실감이 만연해있고, 다르다는 것은 위협이 된다"며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상황이 전보다 더 위험하다"라고 평가했다.
전 유고브 대표이자 여론조사 전문가인 피터 켈너는 최근 유럽에서는 극심하게 분열된 정치 환경이 개인을 향한 폭력 행위를 촉발할 수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켈너는 "정치적 견해가 강한 사람들이 선동하는 것은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극단주의적인 언어가 있을 때 일부 사람들이 정말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내달 초로 다가온 유럽 의회 선거 결과가 분열의 정치를 더 심화할지 주목된다.
EU 27개국에서 내달 6일부터 나흘간 유럽 의회 의원 720명을 선출하는 선거가 치러진다.
현재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극우 성향 의원이 입법을 막을 수 있을 만큼 다수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생활비, 에너지 위기, 불법 이민에 좌절하고 지정학적 지형 변화에 동요하는 유권자들이 주류 정당을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하면서 EU 전역에서 극우 정당이 득세할 것을 예고한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dy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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