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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 최재천의 해법 "의대증원? 이렇게 꼬일 이유 없다" [이지영의 직격인터뷰]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내놓은 사회 갈등 해법

 지난 11일 만난 최재천 교수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분야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치만 후진성을 못 면했다”며 “우리 사회에서 숙론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사람은 국회의원”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사회생물학자 최재천(70)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갈등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나온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숙론(熟論)’을 제시했다.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자는 뜻으로, “‘토론’이란 말이 말꼬리 잡는 치졸한 말싸움으로 이미지가 오염돼버렸다”며 그가 대신 선택한 단어다.

지난 11일 서울 충무로에서 만난 그는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석 달째 계속되는 의정 갈등에 대해서도 ‘숙론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숙론 과정을 거치면 이렇게까지 꼬일 이유가 없는 문제”라면서다.
대충 얘기하고 밀어붙여 사달
힘들고 길어져도 숙론이 지름길

토론 문화 말살은 일제의 잔재
주입식 식민화 교육에 전통 잃어

말꼬리 잡고 언쟁 일삼는 국회
상대 제압보다 합의 집중해야



이지영 논설위원


Q :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 의사인력전문위원회 등에서 논의를 했다고 하는데.
“회의를 했다고 하지만, 숙론 과정은 전혀 없었을 거다.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나와 남의 생각이 왜 다른지 숙고해보고 더 좋은 목표를 찾아가는 행위가 숙론이다. 의사 집단과 정부만 만날 게 아니라 환자 입장의 사람들도 들어와 모여 앉았어야 했다.”


Q : 숙론 없이 정부가 밀어붙여서 이 사달이 났다고 보나.
“우리나라 거의 모든 정책이 이렇게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대충 얘기해보고 대충 밀어붙이니까 항상 일이 힘들다. 험악한 표현으로 하자면, 정부 부처 국장·과장 등 공무원들과 이른바 전문가라고 불리는 대학교수·연구원들이 앉아 ‘우리가 최선을 다해 만들어주면 개돼지 국민은 즐거워하실 거야’ 하는 식으로 만든다. 이래서 어떻게 전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겠나. 그러니 국민의 어느 부분에서는 불평이 쏟아져 나오고, 그 불평이 확대되면 잘못된 정책으로 낙인 찍히는 거다. 세간에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은 대책을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니는 이유다. 처음부터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마주 앉아야 한다. 그 과정이 좀 힘들고 길어지더라도 함께 숙론하면 훨씬 좋은 정책이 만들어진다.”

조선 시대 임금도 경연 통해 토론
‘숙론’은 최근 10년간 그가 붙들고 고민한 주제다. 오랜 집필 과정을 거쳐 이달 초 책 『숙론』(김영사)도 펴냈다. 고민의 시작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왜 유독 토론은 제대로 못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접한 토론 수업을 귀국 후 국내 대학에서도 줄곧 접목해왔다. “왜 토론을 이렇게 못할까 한탄만 하고 세월을 보냈는데, 어느 순간 나만큼 숙론의 경험을 많이 한 사람 없겠다 싶어 책을 쓰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Q : 서울대에서 숙론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이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아 힘들었다고 책에 썼다. 겸양을 지향하는 국민성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걸까.
“아니다. 내가 관찰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얘기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탈춤만 봐도 그렇다. 탈 정도의 가림막만 있어도 신분사회에서 하층민이 양반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서슴없이 냈다. 역사적으로 토론 문화도 있었다. 조선 시대 임금의 경연(經筵)이 그중 하나다. 경전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신하들과 토론을 벌였다.”


Q : 그렇다면 왜 토론, 숙론을 못하게 된 것인가.
“일제시대 때 받은 교육이 문제였다. 식민화를 위해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을 펼치면서 토론 문화를 말살시켰다. 그러니까 우리가 갖고 있던 것을 잃은 것이지 원래 갖고 있지 않았던 게 아니다. 지금도 대학 졸업할 때까지 토론 수업을 제대로 받아본 사람이 거의 없다. 배우지 못해서 토론을 못 하는 것이다. 정규 교육에 토론이 반영되고 조금만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토론 수준을 넘어 숙론의 꽃이 필 수 있다고 본다.”


Q : 토론을 못 배운 사람들끼리 사회 현안의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성인이 된 뒤 배워도 익힐 수 있을까.
“가능하다. 미국식으로 운영하는 내 연구실에선 학생들이 교수를 개의치 않고 토론 시간에 자기 주장을 펼친다. 그렇게 하도록 훈련을 시킨 결과다. 그 학생들 중 세 명이 일본으로 박사 과정 유학을 갔는데, 셋 다 재미없어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하더라. 토론하면서 대학원생들은 아무 말 안 하고 교수들만 얘기하는 분위기를 못 견디는 것이다.”

'18세 선거권'이 토론 수업 기회 될 수도

Q : 토론 교육이 학교 안에서 시행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토론이 입시에 반영되거나 토론을 잘하는 것이 입시에 어떤 형태로든 유리한 구도가 되면 효과가 크지 않을까. 그게 금방 안된다 하더라도 ‘18세 선거권’ 도입이 절묘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의견이 갈리고 쟁점이 풍부한 정치는 토론을 학습할 수 있는 훌륭한 주제다. 어떤 룰을 지켜서 토론을 해야 하는지 선생님들이 잘 리드해주면 아이들이 입시에 아무 관계 없어도 굉장히 즐길 것 같다. 이를 위해선 토론 수업을 진행할 교사들을 위한 교육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Q : 바람직한 토론을 이끄는 기술이 따로 있나.
“기술보다 중요한 건, 숙론 과정을 통해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옳으냐’를 함께 찾겠다는 목표의식이다. 또 숙론을 시작하기 전에 규칙부터 합의해야 한다. 1990년 넬슨 만델라 석방 직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회 혼란상 타계책을 찾기 위해 열린 ‘몽플뢰르 콘퍼런스’는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가 원하는 미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단정적 어법은 금한다’ 등을 원칙으로 정하고 지켰다.”


Q : 이해관계가 걸린 토론의 경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을텐데.
“그렇다. 토론·숙론마다 그 성격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합의를 통해 정하면 된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엔 ‘다른 집단의 주장을 말꼬리 잡으면서 비방하지 말자’ ‘자기 집단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만 하자’ 등을 원칙으로 정할 수 있겠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상대를 비방하고 상대를 무너뜨림으로써 그 이득을 얻는 방식으로 일했다. 그러다 보니 인신공격으로까지 이어졌다.”

토론자 잘잘못이 이슈 되면 안돼

Q : 그런 상황을 국회에서 많이 본다.
“국회의원들은 숙론을 잘 하라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만나면 싸움에 말꼬리 잡고 신경질을 일삼는다. 토론이 언쟁이 되면서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한 무대가 돼버렸다. 토론에선 토론자가 잘하고 못하고가 이슈가 되면 안 된다. 공동의 합의를 도출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상대를 제압하려고만 한다. 2013년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맡으면서 3년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했다. 의원들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다른 사람 말은 들으려고도 안 하더라. 토론식 의사소통을 하는 의원은 심상정 의원 한 명밖에 못 봤다.”


Q : 동물학자로서 숙론과 관련, 동물의 생태에서 얻은 힌트가 있다면.
“동물이 언어를 인간만큼 활발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숙론을 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소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 수컷 귀뚜라미는 가을이 되면 식음을 전폐하고 긁어대며 소리를 낸다. 암컷과 짝짓기하기 위해서다. 소통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Q : 어떤 토론이 좋은 토론인지 모델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TV 토론 프로그램 중에 그런 사례가 있을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한번 만들어볼까란 고민도 있다. 내년 2월 학교에서 퇴임한 뒤 어딘가에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슈들에 대해 시간 압박 없이 ‘무제한 숙론’을 하고, 그렇게 합의점을 찾는 성공 사례들을 보여주면 숙론의 바람이 일어나지 않을까. 숙론의 장이 수시로 만들어지는 사회 분위기가 되면 아무리 막강한 이익집단도 무리한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Q : 흡사 ‘숙론 전도사’ 같다.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다. 많은 것을 제법 잘하는 나라인데도 행복한 사람이 없다. 분배도 제대로 안 된다. 진작 숙론을 잘했으면 이런 지경까지 안 왔겠지만 더 늦기 전에 숙론을 해야 한다. 특히 세대 갈등은 이제 겨우 시작 국면이다. 조만간 악화일로로 접어들 것이다. 고령화에 따른 돌봄 문제도 어떻게든 빨리 풀어야 젊은 세대의 부담이 줄어든다. 대한민국 정도 되면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게,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하지 않나. 마주 앉아 얘기하는 법만 배워도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 같다.”


Q : 가능성이 보이나.
“요즘 우리 사회가 문화와 학술의 꽃이 만개했던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혼란스럽지만 책 읽고 토론하는 독서 모임들이 뜻밖에 참 많다. 비 온 뒤 버섯 올라오듯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조금씩 숙론을 스스로 학습, 자습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움의 속도가 워낙 빠르지 않나.”

◇최재천=1954년생.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이 지도교수였다. 1994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이화여대로 옮겼고, 2013년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과 함께 생명다양성 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20년 개설한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은 구독자 70만 명을 넘겼다.



이지영(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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