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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목련꽃 피는 5월 아침에

정찬열 시인

정찬열 시인

5월이면 목련꽃이 피고 진다. 해마다 이맘때면 광주 금남로 거리에 나뒹굴던 목련꽃 이파리를 떠올리게 된다.  
 
80년 5월 20일 정오. 전남도청 앞 광장에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을 향해 계엄군이 총을 난사했다. 금남로 거리에 피어나던 목련꽃 이파리가 무더기로 떨어져 아스팔트 위에 수북이 쌓여갔다. 하얀 목련꽃이 핏빛으로 물들어 거리를 흥건히 적셨다. 시위대는 흩어지고 그렇게 형세는 기울어진 듯싶었다.  
 
그 날 해가 뉘엿할 무렵. 금남로 끄트머리에서 버스를 앞세운 택시 행렬이 도청을 향해 도도히 진군해 오기 시작했다. 백 대일까 이백 대일까. 금남로 넓은 길을 꽉 메운 자동차 행렬이 로마군단의 전차처럼 위용을 과시하며 느리게 진군했다, 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시민들이 손뼉을 쳤다. 자동차군단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도청 앞에 다다랐다. 계엄군이 최루탄을 발사했다. 시위대가 눈물을 흘리며 달아나자 군인들이 방망이를 들고 쫓아가 무차별 타격했다. 길가 상점들은 가게 앞에 치약과 물이 담긴 양동이를 내놓았다. 일진일퇴,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통신이 끊겼다. 광주는 섬이 되었다. 정부는 광주 시민을 폭도라 왜곡했고 언론은 그대로 전달했다. 바로 그때, 한 작은 신문사가 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공개 사직서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또 하나. 그 비극의 현장에 호외로 뿌려지던 한 편의 시를 나는 기억한다. “아아, 광주여 / 우리나라 십자가여 / 광주여, 무등산이여 /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 우리들의 영원한 도시여…” 김준태 시인이 쓴 시다. 금남로를 걸어가던 중 바람에 나뒹굴던 이 시를 주워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전남도청에 모여있던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광주시민 여러분, 학생들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어둠을 뚫고 들려오던 애절한 여인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정부는 사망 154명, 행불 64명, 중상 93명이라 발표했다.    
 
그로부터 44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사람들은 그때의 일을 5·18 민주항쟁이라 부른다. 유신정권이 무너지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 세력이 계엄령을 선포하자 전국이 공포와 침묵으로 얼어붙었다. 그때 광주는 서슬 퍼런 총칼 앞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불의에 맞서 죽음으로 항쟁하는 정의로운 도시, 빛고을 광주는 그렇게 역사와 국민 앞에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다.    
 
다시 5월이다. 목련꽃 피는 이 계절에 금남로를 떠올린다. 그날을 되새겨 보는 행사가 오는 18일 저녁 LA 한국교육원에서 열린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했던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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