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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미소 봤다"…문수보살 없는데 '문수산'이라 부른 까닭

15일 부처님오신날, 산에 깃든 불교
경남 양산시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설법한 인도 영축산과 이름이 같다. 신불산과 이어지는 4㎞ 평원에 억새밭이 펼쳐진다. 김홍준 기자
남자는 무릎이 안 좋아 아예 겅중겅중 발을 옮겼다. 여자는 보폭을 줄여 남자와 어깨를 맞추며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걸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경기도 김포시에서 가장 높은 산, 문수산(文殊山·376m)이었다. 이미 오래 그래왔던 것처럼 이 산을 이렇게 부른다. 산 이름을 만든 건 문수사다. 앞서 비아산(比兒山)이었지만 불교 융성했던 통일신라 때 들어선 절 따라 산 이름도 바뀌었다. 부처의 왼쪽에서 협시(挾侍·부처를 모심)하며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그 문수다. 문수산은 울주에도 있고, 고창에도 있다. 관음보살에서 이름 따온 관음산도 있다. 천불산·불곡산·불모산·불암산 등 부처(佛·불)를 그대로 새긴 산이 있고, 가섭산(석가모니의 제자), 미타산(아미타불의 줄임말)도 있으니, 택리지를 쓴 이중환(1690~1756)이 “천하의 명산을 승려와 절이 차지했다”고 했을 정도다. 불교는 산이 됐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중앙SUNDAY는 ‘산에 깃든 불교’를 게재했다. 불기 2568년이 되는 올해. 그 시즌2를 내놓는다.

“그런데, (김포) 문수산 문수사에는 문수보살이 없어요.”

30년 가까이 문수산을 오간 이정호(72·김포 양곡)씨의 말이다. 어찌 된 일인가. 부부가 바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비로전(毘盧展)’을 지났다. 부부는 “대웅전이 아니고 ? ”라며 서로 물어봤다.



“여러 부처 서열 없고 지역구 다를 뿐”

경기 김포시 문수사는 산과 산성 이름을 만들었다. 문수산성 장대 앞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김홍준 기자
부처의 모습은 여럿이다. 어느 부처를 모시느냐에 따라 전각 이름도 다르다. ‘진리를 깨달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면 대웅전, ‘극락정토 세계’의 아미타불을 모시면 극락전·미타전·무량수전이라고 한다. ‘병고와 재난을 없애는 현세구복’의 약사여래를 모시면 약사전이고, ‘내세에 내려와 중생을 제도’한다는 미륵불을 모시면 미륵전·용화전이라고 부른다. 문수사는 ‘온 우주를 밝히는 화엄경의 최고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비로전·(대)적광전이 비로자나불을 봉안하는 전각이다.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보살이다.

그렇다면 이들 부처의 지위고하가 있는 것일까. “모든 부처는 깨달음이라는 기준에서는 대등합니다. 그 부처님이 속한 환경, 쉽게 말하면 ‘지역구’가 다른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이 중심이 되기에, 대웅전도 많은 겁니다.” 자현 스님(중앙승가대학교)의 말이다.

문수산은 불경을 가지러 서역으로 향하는 삼장법사처럼, 느릿느릿 걸어도 괜찮다. 이정호씨는 “산이 부담 없어요. 전형적인 육산(肉山·흙과 나무가 많은 산)이라 요양하시는 분도 꽤 오고, 주말이면 다리(초지대교) 건너 강화 마니산이나 고려산으로 가는 인파를 피해 일부러 오는 사람도 꽤 있고요”라며 문수산을 추켜세웠다.

문수산 산행은 대부분 문수산성을 따라 이뤄진다. 문수산성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초토화됐다. 세 개의 성문(서문·남문·북문)과 성벽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현재 복원 작업이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적을 살피느라 사방 트인 곳에 만든 산성은 처참한 과거를 되새김하면서 지금 빼어난 조망을 선사한다.

문수사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비로전이 있다. 김홍준 기자
문수보살 성지로는 강원도 평창 오대산이 꼽힌다. 오대산은 중국 오대산(五臺山·우타이산)이 갖는 불교적 역할과 이름을 가져왔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왔기에, 그곳들의 산 이름을 쓰게 된 경우다.

경남 양산시 영축산(靈鷲山·1082m)도 그렇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설법한 인도 마가다국의 산이다. 그런데 ‘축(鷲)’을 우리나라에서는 ‘취’로 읽으면서 영축산을 영취산 혹은 취서산으로 부르기도 했다. 양산시는 1463년 간행된 『법화경언해본』과 불교에서는 ‘축’으로 읽는다는 점 등을 들어 국립지리원 고시를 통해 ‘영축산’으로 통일했다. 그래서 한자로 써진 통도사 일주문의 현판을 ‘영축산 통도사’라고 읽는 게 맞다는 것이다.

영축산을 뒤덮었던 비가 사라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북쪽 지산마을에서 시작하는 산길은 곧 갈지자(之) 각도를 만든다. 갈지자를 뚫고 일자로 내달려 시간을 당길 순 있지만, 체력도 떨어진다. 용맹정진. 통도(通度·깨달음을 얻어 득도함)의 길이었다. 번쩍하고 산이 열렸다. 불교에서 말하는 개산(開山·원래는 절을 세운다는 뜻)인가. 탁 트인 영축산 정상에서 통도사가 보인다.

“어지러운 걸 내려놓으려 산에 올라오지요.”

경기도 고양시 화정역 광장에 만든 부처님오신날 연등 트리. 김홍준 기자
울산광역시에서 왔다는 김모(68)씨의 설법 아닌 설법. “그나마 저 아래와 멀리 떨어져 들리지 않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세계적 명상 지도 아잔 브람 스님의 ‘내려놓으면 평화가 온다’는 경구처럼 들렸다. 그는 영축산과 함께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북쪽 신불산(神佛山·1159m)으로 향한다고 했다. 영남알프스는 9개의 산이 모여 면적 255㎢에 이르는, 알프스에 견줄만한 비경을 가졌다는 산군이다. 영축산에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은 신령(神)이 불도(佛)를 닦으러 신불산에 간다는 해석이 가능할까. 이 두 산 사이를 잇는 넓고 평탄한 4㎞ 능선에 펼쳐진 억새밭이 장관인 것은 분명하다. 김씨가 하도 길어 지평선이라도 생길 것 같은 능선을 따라 꼬물꼬물하더니 사라졌다. 그는 신불산의 신불사로 내려선다고 했다.

‘절 사(寺)’는 본디 없던 말이다. 관청을 뜻하는 ‘시’였다. 그러다가 후한시대에 불교가 중국에 전래하면서 서역의 승려들이 중국을 자주 찾게 됐는데, 이들이 묵었던 관청(임시숙소) ‘시’가 ‘사’로 변했고, 단어 자체가 관청보다 절의 의미가 강하게 됐다. 통도사나 가야산 해인사 같은 큰 절에는 10개 이상의 암자(庵子)가 있다. 암(庵)은 큰 절에 딸린 작은 절이요, 자(子)는 주전자의 ‘자’ 같은 접미사다. 영축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수십 개의 암자와 말사가 보인다.

“기도보다 더한 현실의 간절함 경험”

경남 양산시 통도사 대방광전 앞 연못에 핀 연꽃. 연꽃은 청정·진리·인연을 상징하며 석가모니 탄생 설화에도 등장한다. 김홍준 기자
지난 8일은 음력 4월 초하루. 통도사 대방광전에는 7일 뒤의 4월 초파일을 앞두고 불자들의 기도가 한창이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왔다는 이모(62)씨는 “아예 부처님오신날까지 일주일 지내다가 갈 예정”이라며 “숙박 잡느라 3개월 전부터 기도보다 더한 현실의 간절함을 경험했다”며 웃었다. 정부에서 이런 보도자료를 보낸 적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 ‘석가탄신일’이라고 계속 쓰니 바른 뜻으로 해달라’는 취지였다. 석가모니는 ‘석가’라는 부족에서 나온 부처를 뜻한다. 그러니, ‘석가탄신일’이라고 하면 부족마을이 생긴 때, 지금으로 치면 6단지 아파트 준공일쯤 된다는 얘기다. 불교계가 정부에 올바로 잡아달라고 했다. 2017년 10월 17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공식명칭은 ‘부처님오신날’이 됐다.

국제적인 ‘부처님오신날’은 음력 4월 15일이다. 유엔(UN)은 1999년에 ‘웨삭(베삭) 데이’를 부처님오신날로 정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대만·홍콩은 음력 4월 8일이지만, 일본은 양력 4월 8일이다. 석가모니는 음력 2월 8일에 출가했다. 12월 8일에 깨달음을 얻었다. 8만4000 법문을 설한 뒤 열반에 들었다. 남겨진 사리(舍利)의 개수는 ‘8섬 4말.’ 4의 배수가 반복됐다. 불교 기본 교의인 사성제(四聖諦), 절을 지키는 사천왕(四天王), 수행방법의 하나로 중생을 대할 때의 네 가지 마음 사무량심(四無量心) 등 ‘4’는 불교를 떠받치는 숫자다.

가야산 국립공원을 이루는 천불산(千佛山). 수많은 바위가 부처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아미타불 . 부처는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다. 모든 곳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부처가 산이 됐고, 산이 부처가 됐다. 문수산 하산길에서 다시 만난 부부는 부처의 미소처럼 답했다.





김홍준(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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