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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이윤영 목사의 제헌의회 기도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1948년 5월 31일, 역사적인 대한민국 제헌의회가 개원했다. 국회의장에 당선된 이승만이 회의를 진행하려고 의장석에 앉았다. 공식 식순과 관계없이 이승만은 서울 종로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윤영(李允榮, 1890~1975·사진) 목사에게 개원 축도(祝禱)를 부탁했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이승만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기독교가 국교도 아닌데 비교도들은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축도를 시작하자 모두 기립했다. 당시 이윤영을 총리로 내정하고 얘기가 오가던 터라 기도는 시정 연설에 가까웠다.

신영웅전
해방됐으니 하느님에 대한 감사 기도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감사, 농지 개혁, 교육 제도, 월남민 대책, 국민 통합, 남녀평등, 민주주의의 원리 등 기도가 길게 이어졌다. 원고지 10장 분량이었다(『윤치영 회고록』). 그렇지 않아도 심기가 불편했던 제헌 의원들은 몸을 뒤틀며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초대 국회 개원식은 그렇게 끝났다.

8월이 되자 이승만은 초대 내각을 발표했는데 총리에 이윤영 목사를 지명했다. 장로로서 이승만의 목사에 대한 호감뿐만 아니라 이북 출신에 대한 배려 등 여러 고려 사항이 있었다. 목사가 총리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이윤영이 총리에 임명되자 의원들은 “아, 기도 길게 한 그분…”이라 수군거렸고, 결국 193명의 재석 의원 중 찬성 59표, 반대 132표로 지명 안이 부결됐다. 긴 기도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그 뒤에 우여곡절을 거쳐 민족청년단장으로 초대 국방부 장관에 지명된 이범석(1900~1972)이 총리로 지명됐다. 이승만과 이범석의 갈등과 후대에 끼친 영향은 이 글의 범위를 넘는다. 역사는 거대한 ‘예정 조화’가 아니라 사소함과 우발의 모둠이다. “기도가 길어서는 안 된다.”(『신약성경』 마르코복음 12 : 40)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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