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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6·25 참전 기념물…의료진 파견 70년만

獨적십자 본부에 장승 조형…"사상 가장 길고 어려운 임무" "부산서 파견 근무한 부친, 한국 간호사 아들이 의사로 돌봐"

독일 베를린에 6·25 참전 기념물…의료진 파견 70년만
獨적십자 본부에 장승 조형…"사상 가장 길고 어려운 임무"
"부산서 파견 근무한 부친, 한국 간호사 아들이 의사로 돌봐"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제가 12살 때 아버지가 부산에서 돌아오시면서 한국 할아버지들이 쓰는 갓과 곰방대를 선물로 주셨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93세의 나이로 처음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를 돌본 의사가 부산에서 함께 일한 한국 간호사의 아들이었어요. 제게는 숙명과도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전직 독일 외교관 한스요아힘 데어(80)는 곰방대를 들어 보이며 부친이 한국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1956년을 떠올렸다. 그는 1974년 부산을 방문해 전후 서독 적십자병원으로 쓰인 부산여고를 둘러보고 부친과 함께 일한 한국 의사도 만났다고 했다.

한국전쟁 직후 부산에서 전쟁 상흔을 돌본 독일 의료지원단을 기리는 기념 조형물이 파견 70년 만에 독일 베를린에 들어섰다.


8일 오후(현지시간) 베를린에 있는 독일 적십자사 마당에서 열린 제막식에는 양국에서 100여명이 참석해 독일 의료진의 헌신과 양국 상호 원조·교류를 되새겼다.
독일 적십자사는 1954년 5월부터 1959년 3월까지 부산에 적십자병원을 운영하며 환자 22만7천250명을 치료하고 산모 6천25명의 분만을 도왔다. 파견 의료진은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해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역할도 했다.
이후 1960∼1970년대에는 반대로 의료 인력이 부족했던 독일로 1만명 넘는 한국 간호사가 건너가 환자를 돌봤다.

두 차례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은 한국전쟁 당시 자체 군대도 없었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처지였다. 독일 의료지원단은 애초 야전병원 운영을 계획했지만, 활동을 본격 시작한 건 휴전협정 이후였다. 한국 정부는 2018년에야 독일을 참전국(의료지원국)으로, 의료진 등 117명을 참전용사로 인정했다.
폴크마르 쇤 독일 적십자사 부총재는 "한국에서 활동은 독일 적십자사 160년 역사상 가장 길고 어려운 임무였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파견 임무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든 중립을 지키면서 필요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기념 조형물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강동환 씨가 남녀 장승을 형상화해 청동으로 제작했다. 천하대장군은 전쟁의 참상에 놀란 적십자 관계자를, 지하여장군은 그를 치유하는 간호사를 상징한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전통적으로 수호신 역할을 한 장승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대한민국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도와준 독일 의료지원단의 헌신을 담아냈다"며 "독일과 대한민국을 잇는 가교이자 의료지원단의 숭고한 헌신을 기억하는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적십자사는 제막식과 함께 의료지원단의 5년간 활동을 발굴해 기록한 책 '그들은 우리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를 한국어와 독일어로 발간했다. 책에는 부산에서 치기공사와 간호사로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참전용사 고(故) 후베르트·헤드비히 마이어 부부 가족의 연합뉴스 인터뷰도 실렸다.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김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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