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큼 꼭 필요했다…홀로 서야하는 청년들, 서로 공유한 것들 [소외된 자립청년]
지난달 4일 오후 1시쯤 경남 창원시 소재 굿네이버스 센터에 자립준비청년(이하 자립청년) 3명이 모였다. 경상남도 자립지원 전담기관인 이곳에서 서로 생각하는 진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한 자립청년이 가정위탁 출신 이동휘(24·가명)씨를 향해 “요즘도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고민 중이냐”고 물었다. 동휘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센터는 여행·낚시·요리·영화·제빵 등 공통 관심사를 중심으로 자립청년들의 모임인 ‘자조(自助) 모임’을 202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 자립청년 162명이 활동하고 있다. 서로 고민과 정보를 공유하며 고립에서 벗어나 작은 공동체를 구축하는 게 주요 목표다.
“나도 낭만을 좇을 수 있구나” 꿈이 생겼다
대학에서 수채화를 전공했던 그는 과 1등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을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며 경력도 쌓았다. 그러나 3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모든 의욕을 잃었다. 그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했던 그는 이 모임에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그는 “상담을 하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볼 수 있었다”며 “하루 먹고 사는 데 급급했는데 시야가 넓어지며 ‘나도 낭만을 좇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보육원 출신 자립청년 방성혁(26·가명)씨는 매주 화요일마다 축구 모임에 나간다. 함께 땀 흘리며 친목도 쌓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서 제공하는 주거복지 서비스 등 각종 정보를 공유하려는 목적도 있다. 방씨는 “복지 서비스 대부분이 직접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보니 모르면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각 시·도 자립지원 전담기관 외 민간 단체들도 자립청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아동복지협회는 면접 교육과 취업 성공시 수당 등을 지급하고, 아름다운가게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긴급 생계비와 교육비 등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은 2020년부터 자립청년 대상 주택 무이자 대출도 지원 중이다.
의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힘
전문가들은 자립청년들이 믿고 의지할만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일상생활 속 궁금증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다양한 국민멘토가 필요하다”며 “정부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 부모같은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장기적인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식 아름다운재단 변화확산국 국장은 “정부가 자립전담기관을 만든 건 어른이라는 존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인데 지원 정책은 경제적 지원에 집중돼 있다”며 “영국의 경우 자립 요원이 청년의 집에 방문하고, 이사를 했을 땐 이사한 거주지가 괜찮은지 이웃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등까지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불쌍한 사람 돕자 아닌 ‘사람에 대한 투자’로
SoL이 운영하는 오픈 채팅방에선 하루에 4~5번씩 단체 음성통화가 열린다. 문자로는 담을 수 없는 기분이나 감정을 함께 실시간으로 나누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통화가 시작되면 익명으로 10분~30분가량 고민을 나누고 수다도 떤다. 윤씨는 “자립청년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갑자기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자립 전부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립 전 시설 등에서 보호를 받을 때부터 멘토와 관계를 맺어 사회적 가족을 형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협회를 운영하는 주우진(29) 대표는 지난 2021년 4월 협회를 만들었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자립준비청년의 모습을 사회에 가감 없이 보여주고 편견을 줄이고 싶었다고 한다. 주 대표는 “자립준비청년이 불쌍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기도 하고, 개인별로 관심사나 생각이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사람에 대한 투자’의 관점으로 보면 더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 대표는 “진정한 자립을 위해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사회에서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당사자들은 결국 자신의 출신과 환경을 거부하거나 숨기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서원.정세희.박종서(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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