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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큼 꼭 필요했다…홀로 서야하는 청년들, 서로 공유한 것들 [소외된 자립청년]

4월 4일 오후 경남 창원시 경상남도자립지원전담기관인 경남 창원의 굿네이버스 경남지부 센터에서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자조모임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달 4일 오후 1시쯤 경남 창원시 소재 굿네이버스 센터에 자립준비청년(이하 자립청년) 3명이 모였다. 경상남도 자립지원 전담기관인 이곳에서 서로 생각하는 진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한 자립청년이 가정위탁 출신 이동휘(24·가명)씨를 향해 “요즘도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고민 중이냐”고 물었다. 동휘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센터는 여행·낚시·요리·영화·제빵 등 공통 관심사를 중심으로 자립청년들의 모임인 ‘자조(自助) 모임’을 202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 자립청년 162명이 활동하고 있다. 서로 고민과 정보를 공유하며 고립에서 벗어나 작은 공동체를 구축하는 게 주요 목표다.


“나도 낭만을 좇을 수 있구나” 꿈이 생겼다
동휘씨는 지난해 4월 이곳에 처음 나왔다. 어릴 때 조부모와 함께 자란 그는 보호자가 있다고 여겼다. 정부에서 말하는 자립청년에 해당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센터 전담 요원이 가정위탁 출신 자립청년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동휘씨를 만났다. 센터 관계자는 “보육원 출신이 아니라 친척 손에 맡겨져 자란 아이들은 본인이 자립청년 기준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고 설명했다.




경상남도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만난 자립준비청년 이동휘(24)씨가 자신이 그린 웹툰을 보여주고 있다. 정세희기자
이동휘씨가 그린 웹툰. 정세희기자

대학에서 수채화를 전공했던 그는 과 1등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을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며 경력도 쌓았다. 그러나 3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모든 의욕을 잃었다. 그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했던 그는 이 모임에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그는 “상담을 하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볼 수 있었다”며 “하루 먹고 사는 데 급급했는데 시야가 넓어지며 ‘나도 낭만을 좇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보육원 출신 자립청년 방성혁(26·가명)씨는 매주 화요일마다 축구 모임에 나간다. 함께 땀 흘리며 친목도 쌓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서 제공하는 주거복지 서비스 등 각종 정보를 공유하려는 목적도 있다. 방씨는 “복지 서비스 대부분이 직접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보니 모르면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각 시·도 자립지원 전담기관 외 민간 단체들도 자립청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아동복지협회는 면접 교육과 취업 성공시 수당 등을 지급하고, 아름다운가게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긴급 생계비와 교육비 등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은 2020년부터 자립청년 대상 주택 무이자 대출도 지원 중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의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힘
김주원 기자
자립청년을 위한 쉼터는 온라인에서도 생기고 있다. 익명이 보장된 오픈 채팅방에서는 하루에 수십 개씩 고민 글이 올라온다. 구직 시 보육원 출신인지 써야 할지, 기초생활수급비는 어떻게 받는지 등을 묻는 내용이다. 경험을 공유하거나 위로하고 응원하며 서로 버팀목을 자처한다. 자립청년인 손자영 아름다운재단 캠페이너는 “자립 초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집 구하는 데 애를 먹었는데 고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립청년들이 믿고 의지할만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일상생활 속 궁금증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다양한 국민멘토가 필요하다”며 “정부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 부모같은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장기적인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김성식 아름다운재단 변화확산국 국장은 “정부가 자립전담기관을 만든 건 어른이라는 존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인데 지원 정책은 경제적 지원에 집중돼 있다”며 “영국의 경우 자립 요원이 청년의 집에 방문하고, 이사를 했을 땐 이사한 거주지가 괜찮은지 이웃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등까지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불쌍한 사람 돕자 아닌 ‘사람에 대한 투자’로
자립준비청년 지원모임 SoL(Shine on Light)을 운영하고 있는 윤도현씨. 본인 제공
당사자들이 직접 만든 네트워크도 있다. 유한대 사회복지학과 윤도현(22)씨는 자립청년들과 후원자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역시 18년간 보육원에서 성장한 자립청년이다. 2년 전 자립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자립청년들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연결할 방법을 떠올렸다. 크리스마스에 1대 1로 후원자를 배정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자립준비청년 지원모임 솔(SoL·Shine on Light)을 만들었다.


SoL이 운영하는 오픈 채팅방에선 하루에 4~5번씩 단체 음성통화가 열린다. 문자로는 담을 수 없는 기분이나 감정을 함께 실시간으로 나누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통화가 시작되면 익명으로 10분~30분가량 고민을 나누고 수다도 떤다. 윤씨는 “자립청년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갑자기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자립 전부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립 전 시설 등에서 보호를 받을 때부터 멘토와 관계를 맺어 사회적 가족을 형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협회 주우진(왼쪽에서 세 번째) 대표. 자립준비청년협회 홈페이지

자립준비청년협회를 운영하는 주우진(29) 대표는 지난 2021년 4월 협회를 만들었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자립준비청년의 모습을 사회에 가감 없이 보여주고 편견을 줄이고 싶었다고 한다. 주 대표는 “자립준비청년이 불쌍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기도 하고, 개인별로 관심사나 생각이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사람에 대한 투자’의 관점으로 보면 더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 대표는 “진정한 자립을 위해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사회에서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당사자들은 결국 자신의 출신과 환경을 거부하거나 숨기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
보호자가 없거나 양육을 포기해 아동보육시설·그룹홈·위탁가정에서 성장한 뒤 만 18세가 되어 홀로서기를 시작한 청년. 보호종료 이후 5년간 정착지원금 및 자립수당 등 정부 지원을 받는다. 정부는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립준비청년이 20명이라고 집계했다. 하지만 정부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청년들의 죽음은 훨씬 더 많았다.




김서원.정세희.박종서(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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