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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생물에 배양육까지…OTT 강타한 '디스토피아 SF' 열풍

6부작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는 지구에 떨어진 의문의 기생 생물이 인간의 뇌를 장악해 세력을 넓혀가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사진 넷플릭스

인간의 뇌를 장악하는 기생생물(‘기생수: 더 그레이’), 인간을 점령하려고 지구로 향하는 외계인(‘삼체’), 전 세계에 육식 혁명을 일으킨 인공 배양육(‘지배종’). 최근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 공개된 대작들이 다루는 소재다.
영화에서 주로 접할 수 있었던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SF(공상과학) 소재가 6~12부작 길이의 시리즈에서 더 세밀하게 다뤄지고 있다.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넷플릭스 6부작 ‘기생수: 더 그레이’(이하 ‘기생수’) 1화를 여는 자막이다. 지구에 떨어진 의문의 기생생물이 인간의 뇌를 장악해 세력을 넓혀가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기생수’는 인간과 조직에 대한 회의감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1화 초반, 넘쳐나는 쓰레기·오염된 바다·죽은 동물 등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들을 통해 인류가 초래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시청자에 각인시킨다.
중국 작가 류츠신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한 넷플릭스 8부작 ‘삼체’에선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은 한 중국인 소녀의 선택이 외계인을 지구로 부른다. “우리 문명은 이미 자구력을 잃었다”는 소녀의 메시지에 외계인은 지구 침공을 결심하게 된다.

8부작 시리즈 '삼체'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를 겪으며 인류와 문명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된 한 여성 과학자가 내린 중대한 결정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야기다.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



디스토피아 SF 소재의 시리즈물은 인간에 대한 반성에서 더 나아가 변화에 대한 바람까지 담아낸다. 인공 배양육을 소재로 한 디즈니플러스 12부작 '지배종'은 2025년 인공 배양육 시대를 연 생명공학기업 대표 윤자유(한효주)와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퇴역 장교 출신 경호원 우채운(주지훈)이 의문의 죽음과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지배종’을 집필한 이수연 작가는 작품 집필 계기에 대해 “개인적인 바람에서 비롯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동물을 안 잡아먹어도 되고 식량 생산을 위해서 숲을 밀어버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며 “그런 시대가 온다면 도살장부터 사료업체까지, 나아가 수많은 농축산업 종사자들에게 미칠 영향도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근미래의 일이기에 어떻게 될까 하는 여러 생각을 갖고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디스토피아 SF, 우리 삶에 보다 밀접해져”
국내에서 제작하는 SF 소재의 OTT 오리지널 시리즈는 과거에도 있었다.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택배기사’(2023)는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미래의 한반도를 배경으로 했고, 넷플릭스 12부작 시리즈 ‘나홀로그대’(2020)는 인공지능 비서와의 불완전한 사랑을 다룬다.

큰 관심을 얻지 못한 과거 작품들과 달리, 최근 공개된 국내 제작 작품들은 성과를 내면서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기생수’는 공개 2주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TV시리즈)에서 영어·비영어 부문 통틀어 1위에 등극했다. 원작 만화가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달 10일부터 매주 공개 중인 ‘지배종’은 OTT 시청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에서 디즈니플러스 한국 TV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기후 변화부터 챗GPT·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 발전으로 SF 소재들은 더는 공상이 아닌 현실로, 우리 삶에 밀접하게 다가오고 있다”면서 “이런 흐름 속에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디스토피아 SF 소재 작품들은 인간을 대체하는 문제까지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힘을 내포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2부작 시리즈 '지배종'은 2025년 인공 배양육 시대를 연 생명공학기업 대표와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퇴역 장교 출신 경호원이 의문의 죽음과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사진 디즈니플러스

탄탄한 대본·영상 구현…한국 SF 제작 능력↑
시대의 흐름과 고민을 반영한 메시지적 측면 외에 제작의 만듦새도 작품 흥행 요인으로 언급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SF 소재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지만, 과학적 상상력을 얼마나 (시각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VFX(시각특수효과) 등 막대한 제작비가 필요한 장르이기에 진입 장벽도 있었다”면서 "최근 한국에서 만드는 SF 작품들은 VFX 기술 덕분에 상상 속 이야기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제작 역량을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기생수’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한국을 넘어 일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 참여를 논의 중이다.

12부작 시리즈 '종말의 바보'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200일을 앞둔 상황에 처한 세상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 넷플릭스

화려한 특수효과나 연출만큼 서사의 기본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 소설 혹은 만화 원작에만 기대지 말고, SF 원작 개발과 더불어 탄탄한 서사와 인물 설정에도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공개한 넷플릭스 12부작 ‘종말의 바보’는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200일을 앞두고,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의 모습을 담았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다 보니 개별 인물을 깊이 있게 보여주지 못하고, 감정과 서사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 평론가는 “황당하고 색다른 상상을 하면 SF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분명한 과학적 기반을 두고 상상을 해야 하는데, 최근 SF 실패 사례들은 과학적 상상력이 빈곤하거나 이를 메꾸기 위해 신파적 서사를 집어넣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간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았지만, 최근 국내 소설계에서도 SF 기반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등 우리나라도 원작 서사를 만들어내는 기본기가 있기 때문에 향후 한국 SF 시리즈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어환희(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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