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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보야?" 최재천 교수가 토론 아닌 '숙론' 화두 꺼낸 까닭

9년간 공들인 신간 『숙론』을 소개하는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김영사 제공

'통섭'의 씨앗을 한국에 뿌린 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가 이번엔 '숙론(熟論)'을 들고 나왔다. 기획과 집필에 9년을 들인 책, 『숙론』(김영사) 신간을 낸 그는 7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린 참 탁월한 민족이고 참 열심히 사는 데, 우리 사회는 왜 이런 지옥일까 궁금했다"며 "신뢰하고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즉 숙론의 방법만 배운다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될지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기대감으로 썼다"고 전했다.

굳이 토론 아닌 숙론이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는 뭘까. 그는 "토론의 '토(討)'라는 글자는 '두드리다'라는 의미가 있다"며 "상대를 제압하려는 토론이라는 오염된 단어를 피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의 연결을 꾀하는 통섭의 학자인 그가 숙론을 고민한 건 자연스럽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합의점을 찾아나가자는 게 그가 제창하는 숙론의 핵심이다. 하지만 다른 게 곧 틀린 것인 한국사회에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도 인정한다. 그는 특히 "일반 시민보다 말 못하는 분들이 앉아있는 여의도에 앉아있다"며 "숙론을 제일 먼저 배워야 할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최재천 교수는 "불가능한 것 같아도 불가능은 아니다"라며 숙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영사 제공



최 교수는 왜 지금이 숙론의 타이밍이냐는 질문에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는 "한국이 재미있는 건 참 좋은데, 사실 사는 게 지옥"이라며 "광화문에선 촛불을 들고, 수백 미터 떨어진 시청 광장에선 태극기ㆍ성조기ㆍ이스라엘기까지 들며 극렬한 의견이 충돌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그대로 옮긴다.

"지금 한국 사회엔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갈등이 다 쏟아진다. 한국이 웬만한 분야에선 거의 최고 수준을 이루었는데, 중요한 건 그 구슬을 잘 꿰는 것이고 그 열쇠가 숙론이라고 본다. 인터넷 공간에 자기 생각을 배설하거나 거리로 뛰쳐나가기 전에 점잖게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는 거다. 이젠 그게 가능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두고 얘기를 할 떄다."

그는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를 강조했다. 넬슨 만델라(1918~2013) 전 대통령이 취임 초 만들었던 숙론의 장, 몽플뢰르 컨퍼런스 이야기다. 몽플뢰르는 남아공 지명으로, 숙론이 열렸던 장소다.

최 교수는 "만델라 대통령은 몽플뢰르 컨퍼런스를 통해 남아공의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 뒤 중도를 선택하는 리더십을 보였다"며 "남아공이 30년 전 해낸 일이고,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세종대왕이 신하들과 열었던 토론 '경연'만 보더라도 우리에겐 숙론 DNA가 있다"며 "일제시대에 사라진 게 아닌가 싶고, 그만큼 빨리 되찾을 수 있다고 본다"라고도 말했다.

최재천 교수는 이 책 집필에 9년을 들였다. 김영사 제공

숙론의 방법론에 대한 질문에서 그는 쉽지 않은 것을 해내려면 악착같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으로, 되게끔 노력해야 한다"면서다. 동물 생태학자인 그는 "종달새도, 베짱이도 식음을 전폐하고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서 지저귀고 울어대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린 소통에 대한 노력이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가 꼽은 숙론의 첫 단추는 공감과 교육이다. 특히 가정교육에 대해선 개인적으로도 할 말이 많다. 그는 아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한다면서 "한 번은 아들이 '아빠, 바보예요(Dad, are you stupid)?'라고 했는데, 한국어로는 패륜 같지만 사실 영어로는 아니다"고 전했다. 이런 말까지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자유로운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골자다.

그가 숙론을 펼치고 싶은 첫 번째 주제는 뭘까. 저출산 문제다. 최 교수는 "저출생 문제 때문에 대한민국은 수렁에 빠졌다"며 "대통령 혼자, 한 부처 또는 몇몇 현인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전문가 및 일반인을 다양하게 모아서 교묘하고 절묘하게 연결 고리들을 시간을 들여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천 교수는 "토론이라는 단어는 오염됐다"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숙론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영사 제공

진격의 대한민국에 숙론 문화가 뿌리내릴 수는 있을까. 최 교수는 "있다"고 확언했다. 구체적 사례도 들었다. 그는 "십수 년 전, 많은 언론이 '이러다 국토가 무덤으로 뒤덮일 것'이라며 매장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썼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 장례문화는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의견이 오피니언리더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화장장이 부족하다는 상황까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일단 숙론의 과정은 어렵지만, 일단 숙론을 통해 결론이 나기만 하면 그 결과를 행동으로 옮기는 건 전광석화와 같을 것"이라며 "미국에선 '머리에서 가슴까지 이르는 거리가 가장 멀다'는 말이 있지만, 우린 우선 머리에서 결론을 내리면 가슴엔 불이 붙는다"고 했다.



전수진(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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