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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권 가격 치솟는다" 금기 손댄 보잉이 부를 재앙

‘사고 대명사’ 된 미국 첨단기술의 상징
경제+
108년 역사의 ‘백 년 기업’ 보잉이 날개를 잃고 추락하고 있다. 코카콜라, 피앤지(P&G), 엑슨모빌, 디즈니 등 100년 이상 존속하는 미국 상장 기업 중에서도 항공기 제조에 뿌리를 둔 보잉은 미국의 첨단 기술 경쟁력을 상징하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현재는 보잉의 향후 10년도 위태로워 보인다. 시스코의 전 임원 케빈 케네디와 컨설턴트 메리 무어는 2004년 펴낸 『100년 기업의 조건』에서 1970년대 포춘지에 선정된 500대 기업 중 3분의 1이 13년 후에 시장에서 사라졌다고 적었다. 그만큼 기업이 오랜 기간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1. 글로벌 항공사 “안전 못믿어”…보잉 대신 에어버스와 계약
10대 중 6.2대. 국내 항공사에서 비행편을 예약했다면 보잉 여객기에 탑승할 확률이 62%다. 나머지 38%는 에어버스. 국내 항공사가 글로벌 항공 산업의 ‘맏형’ 보잉을 1순위로 두고 항공기를 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잉의 비행기가 사고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1월 5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알래스카항공의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 항공사의 보잉 737 맥스 9 여객기는 약 5000m 상공을 비행하던 중 창문과 벽체 일부가 뜯겨 나가면서 비상 착륙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예비 조사 결과, 비행기 조립 시 문을 고정하는 볼트 4개가 누락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사고”라고 비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보잉 항공기발 사고 소식은 지난달 6일에도 또 있었다. 미국 피닉스로 향하던 알래스카항공 보잉 737-800 여객기의 객실에서 연기가 발생해 포틀랜드 공항으로 돌아갔다. 이틀 뒤에는 텍사스주 휴스턴 국제공항에서 유나이티드항공의 보잉 737 맥스8 기종이 착륙 후 활주로를 주행하던 중 이탈하는 사고가, 이달 26일에는 미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델타항공 보잉 767 여객기에서 이륙 직후 기내 오른편 비상 탈출용 슬라이드가 떨어졌다. 믿기지 않지만, 이 모든 사고가 석 달새 일어났다.

항공사는 보잉과 빠르게 손절매 중이다. 국내 1위 대한항공은 지난달 “에어버스 중대형 항공기 A350 계열 기종 33대를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18조원 어치를 모두 에어버스에 ‘올인’했다. 이전까진 보잉과 에어버스의 항공기를 적절히 나눠 구매하며 보잉 106대, 에어버스 56대 정도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해왔다. 미국 항공사도 마찬가지다. 유나이티드 항공은 주문한 보잉 737 맥스 10기종의 출고가 늦어지자, 에어버스와 구매 협상 중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도 “보잉에 주문했던 항공기 중 일부만 인도받을 예정”이라며 “맥스7 항공기는 아예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2. ‘품질보다 숫자’ 경영의 실패…GE식 평가제 도입후 내리막
문제는 보잉의 실패가 항공기 제작사의 추락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잉이 몰락하면 세계 항공 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 있어서다. 보잉의 위기가 항공기 공급망 붕괴로 이어져 결국 소비자 항공권 가격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잉이 몰락하면 가격 전가력(Pricing Power)이 에어버스로 기울 수 있다는 얘기다.



김영희 디자이너
“보잉의 실패는 ‘기업의 실패’가 아닌 ‘경영의 실패’다.” 경영 전문가들의 말이다. 보잉 안팎에선 엔지니어가 중심이던 보잉의 기업 문화가 2003년 무렵부터 변했다고 본다. GE 출신 경영진이 보잉 경영을 맡기 시작한 시점이다. 1997년 에어버스 뒤를 쫓던 3위 맥도넬 더글라스(MD)를 보잉이 합병한 이후 MD 출신 경영진이 보잉에 진출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GE에서 잭 웰치식 효율 경영을 뼛속까지 익힌 이들이었다. 이때부터 기술이 아닌 숫자가 경영의 중심에 섰다.

비용 절감을 우선한 경영진은 숫자로 엔지니어를 압박했다. 기간 내에 설계를 끝내라고 종용하고 경영진 입맛에 맞는 성과를 내도록 강요했다. GE식 경영 평가제를 도입해 A·B·C 등급 중 최하위인 C등급을 받으면 해고장을 보내기 일쑤였다. 직원은 작업 숙련도를 쌓을 시간이 없었고 항공기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경영진에 보고해도 묵살당했다. 품질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던 보잉의 문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본사 이전을 통해 터졌다. 제임스 맥너니 CEO는 2011년 노동조합을 압박하기 위해 숙련 기술자가 많은 시애틀을 버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차세대 광동체 여객기 B787 드림라이너 조립 시설을 만들었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찰스턴에선 시애틀의 품질 기준을 맞추기 힘들었다. 결국 여기서 생산된 B787은 심각한 결함으로 항공사들이 인수를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3. 민항기 이어 군용기도 ‘주춤’…보잉 몰락 땐 항공권 뛸 수도
GE 출신 최고경영자(CEO)는 안전의 외주화까지 추진했다. 항공기 개발에서 부품 공급사와의 협력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보잉은 부품 공급사에 매년 공급가를 더 낮추라고 압박했다. 응하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보잉의 압박에 시달린 부품 공급사는 하나둘 나가떨어지기 시작했고, 코로나19 직후 항공기 제작이 중단되자 많은 숙련공이 부품 공급사를 떠나버렸다.

김주원 기자
당분간은 에어버스가 독주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에어버스의 신형 비행기 수주 건수는 2319대. 직전 최대치(2014년·1796대)를 경신한 것은 물론, 보잉(1456대)보다 1.6배나 많았다. 1~2월 인도량도 에어버스(79대)가 보잉(54대)을 앞질렀다. 복도가 2개인 광동체 항공기 시장에서는 보잉이 여전히 앞서지만, 에어버스의 A320 네오와 같은 단일 통로 소규모 항공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에어버스 수주량이 급증했다. 여기에 보잉이 B777X를 빨리 출시하지 못한다면 광동체 시장에서도 에어버스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민항기 시장이 보잉의 오른쪽 날개라면 왼쪽 날개는 군수 시장이다. 군수 시장에서도 보잉의 영향력은 약해지고 있다. 1990년 후반부터 크게 뒤졌는데 당시 미 국방부의 3군 통합 전투기개발 사업에서 탈락한 영향이 컸다. 2001년 록히드 마틴이 X-35 모델로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며 미래 전투기 시장의 축이 이동했다.

현재 보잉은 미 공군 차기 고등훈련기(APT) 사업자로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상황이 좋진 않다.

보잉이 주춤한 가운데 민항기 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했던 이 시장에 일본과 중국이 뛰어든 것. 일본 정부는 실패했던 국산 여객기 개발에 재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27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민간 기업과 협력해 2035년까지 차세대 국산 여객기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10년간 정부와 민간 기업이 총 5조엔(44조원)을 투자한다.

중국은 자체 개발한 대형 여객기 C919를 보유하고 있다. 164인승인 C919는 지난해 3월 첫 상업 비행에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다. 상하이-베이징 노선을 3시간 만에 주파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중국상용항공기회사(COMAC)는 C919 4대를 동방항공에 인도해 중국 국내 노선에서 상업 운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강기헌.박영우.오삼권(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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