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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하이브 사태와 K팝의 미래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역시 민희진은 대중을 잘 알았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음반사) 어도어를 이끌며 걸그룹 뉴진스를 세계적으로 성공시킨 스타 크리에이터의 저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경영권 찬탈'(어도어 독립)이라는 하이브의 의혹 제기 이후 따가운 시선 속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한편의 모노드라마 같았다. 정장 대신 일상복 차림에, 제기된 논점을 하나하나 논박하는 대신 내밀한 카톡 대화를 보여줬다. 때론 욕설도 하고 눈물도 흘리는 장면이 가공 없이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누군가의 말처럼 술자리에서 그의 푸념을 듣는 듯했다. ‘리얼한’ 회견 방식에 대중이 그에게 쉽게 이입했다.
K팝 위기론 속에 거물들의 난타전
덩치 키운 '멀티 레이블' 한계 노출
산업생태계 돌아보는 자성 계기로
걸그룹 뉴진스를 탄생시킨 스타 크리에이터 민희진 어도어 대표. 하이브가 민대표의 '경영권 찬탈' 의혹을 제기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의 모습이다.                            [뉴시스}
역시 하이라이트는 “개저씨” “내가 기사 딸린 차를 타냐, 술 X먹냐, 골프를 치냐” “내 법인카드는 야근 식대밖에 안 나온다. 배민” 발언이었다. ‘개저씨’로 상징되는 비합리적이고 남성중심적 조직문화를 경험해 온 직장인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사이다라며 환호했다. 여론도 뒤집혔다. 민희진 티셔츠와 모자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인센티브만 20억 CEO가 K직장인의 아이콘이 되는 순간이었다.
상황은 지루한 법정 공방이 될 전망이다. 하이브는 민 대표를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해임 절차에 들어갔다. 민 대표 측은 그저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상상했을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민 대표가 해임되면 그 정당성을 놓고 손해배상 소송전이 불가피하다. 민 대표가 어도어 지분 18%를 확보하면서 하이브와 맺은 ‘주주 간 계약’의 불합리성에 대한 공방도 진행 중이다. 업무상 배임이 인정되느냐 마느냐, 양측이 결별할 때 서로 얼마를 토해내야 하느냐, 이후 뉴진스는 누구 손을 잡게 되느냐, 앞으로 격랑이 예상되는 포인트들이다.
하이브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간 여러 레이블을 인수하며 덩치를 불려왔으나 내부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리더십의 취약함이 드러났다. K팝의 문제로 지적돼 온 프로듀서 1인의 독단 대신 여러 프로듀서(레이블)들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선진적인 ‘멀티 레이블’ 시스템 도입을 내세워 왔으나, 정작 레이블 간 차별화와 협력체계 구축에는 실패해 내분에 발목이 잡혔다. 교통정리 없이 비슷한 걸그룹을 다른 레이블이 동시에 내놓으니 감정싸움에 밀어주기·카피 논란이 나왔다. 멀티 레이블을 통해 공장처럼 쉼 없이 새 아이돌을 내놓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라이브 실력도 갖추지 못하는 케이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이브 싹쓸이’로 최근 음악방송 무대에 중소 기획사는 물론이고 대형 기획사도 설 자리가 좁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하이브 가수들끼리 음악방송 1,2위 경쟁을 벌이는 일도 잦다.
기자회견에서 민 대표가 저격한 ‘앨범 인플레이션’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팬들이 팬사인회 참가 자격을 얻기 위해, 또는 앨범에 무작위로 들어 있는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혹은 초동(발매 1주 판매량) 경쟁을 위해 수십 장씩 앨범을 사고 버리는 기형적 행태 말이다. 실제 최근 일본 도쿄 시부야 거리에 세븐틴의 새 앨범이 무더기로 버려진 장면이 뉴스를 타기도 했다. 세븐틴은 하이브 산하 플레디스 소속으로, K팝 가수 최초로 초동 500만 장을 넘긴 인기 그룹이다. 이런 시장 교란 상황이 하이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독보적 업계 1위의 책임감에 더해 늘 ‘K팝 위기론’을 말하며 ‘헤비 팬덤’ 탓을 해 온 방시혁 의장이었기에 하는 말이다. 기형적인 헤비 팬덤도 문제지만, 그 일차적 책임은 팬이 아니라 그를 부추기고 의존해 온 산업에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더 이상 음악 회사가 아니라 IP(지식재산권) 회사를 지향하며 수직계열화로 K팝 산업이 고도화하는 과도기에 터져나온 불협화음·성장통이라는 지적이 많다. 워낙 거물들의 난타전이라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 같다. 혹 방시혁 의장이 강조해 온 ‘K팝 위기론’이 깊어질까도 걱정이다.





양성희(yang.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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