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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의 의학오디세이] 의정 갈등에 정치가 나서 주길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신소유주의를 신자유주의의 대체 용어로 사용했다. 그 배경에는 노동 가치를 우선시하면서 소유가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소유주의를 추구하는 이중적 삶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 이를 대입해도 무리는 없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자신의 삶은 신자유주의를 제법 만족하며 사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니 말이다.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 사회의 정치인이라면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라고 에둘러 넘어가기엔 비겁하다. 본능이 정치적 소신으로 포장될 순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논리보다 서사적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다. 허상인 줄 알면서도 서사적 이야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의학적 측면에서 사람의 뇌에 그 해답이 있을 수 있겠다. 신경과학자인 리사 제노바는 ‘기억과 망각은 개개인에게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고 강화하면서 자기 서사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의정갈등 속에 정치역할 안 보여
교수 사직은 의료서비스 임계점
강행과 반대의 논리 유연해지고
이해관계자들 정치가 설득해야

의학오디세이
모두가 삶의 의미를 갈구하지만 이상과 동떨어진 현실은 우리에게 늘 서사를 꿈꾸게 한다. 갈등과 분쟁이 심화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서사는 공감과 연대를 전제하기에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는 쉽지 않다. 각자의 삶이 사회적 관계의 총화 틀 속에서만 움직이니 말이다. 지난 시절 우리 사회 공동체 연대의 기억 총화는 충분했다. 정의로운 서사를 꿈꾸기에도 충분했다. 시대는 엄혹했으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원조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제공해 주는 유례없는 국가로 탈바꿈했으며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 바탕에는 서사가 있는 정치가 있었고 정치인이 있었다. 그러나 애절하게도 지금의 우리는 사실적 정의보다 선택적 정의의 늪에 허우적대고 있다. 차이를 인정조차 하지 않으며 진실을 취사선택하는 비이성적 사회로 치닫고 있다. 중재와 협치의 정치는 유실되었다.

서사가 없는 정치를 본다. 극한 갈등의 대립을 일상적으로 목도한다. 진영논리에 포박된 배제된 정의를 본다. 고통은 온전히 국민 몫이다. 출구를 가늠할 길 없는 의대 정원 갈등이 그렇다. 의료는 국민의 행복한 삶의 버팀목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조율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근엄한 훈수와 양비론적 비판은 있으나 갈등 해결의 직접 당사자가 되지 않으려 한다. 행여 어느 한쪽의 비판에 직면할까 잔뜩 웅크리고 있다. 응당 나서야 할 국회의 역할은 선거의 시간에 실종되었고 정치의 책무는 보이질 않는다.



급박한 응급 환자를 담당하는 대학병원 교수들의 사직이 현실이 된다면 의정 갈등의 임계점을 넘는 일이 될 것이다. 제자들의 희생이 목전에 다다랐는데 스승으로서 하던 일을 계속해도 되는지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대학교수들의 결정은 의사로서의 윤리 기준과 스승으로서의 윤리 기준 사이에 혼란스럽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의정 갈등 책임에서 정부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불변의 원칙처럼 증원 반대라는 구호 속에 원점 재검토만을 주장하는 의사단체의 책임도 이제 고민해 봐야 한다. 필수의료의 붕괴, 지역의료의 소멸 등에 대한 대안도 세밀하게 제시되었어야 했다. 국민에게 의사들은 반대만 한다는 시각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세계가 부러워할 우리의 의학 교육은 오랜 세월 도제식 교육으로 이루어져 왔다. 대한민국 의료의 자부심이었다. 정부 안대로 의사 수를 대폭 늘릴 경우 낙수 효과로 채워질 필수의료의 질에 대해 정부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행여 그렇게 배출된 의사를 ‘더 상업적이고 더 경쟁적인 의료사업가로 내몰게 되지는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진중하게 가져봐야 한다. 정부가 제시하지 못하면 그 해답을 의사들이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공감이 있는 반대가 되고 국가 의료 백년대계라는 서사가 있는 반대가 된다. 그 소통의 역할을 정치가 나서야 한다.

인간의 뇌는 추상적 문제를 이해하도록 진화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현대사회의 극심한 갈등 속에 신뢰의 프레임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유독 집착한다. 선악의 단편적 구분이 그러하고 획일적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일이 만연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게 어디 옳은 일인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위한 입장의 차이들은 당연코 유연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하우 가즈다 감독의 폴란드 영화 ‘포가튼 러브(Forgotten Love)’는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라파우라는 의사의 이야기다. 인술을 펼치는 외과 의사로 돈과 권력보다 사람의 생명이 절대가치임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기억을 잃은 한 저명한 외과 의사의 지고지순한 삶은 의정 갈등 국면에서 가르침을 안겨준다. 우리 의사들도 라파우처럼 그리 해야 하고 그러리라는 믿음, 이제라도 정치가 갈등의 당사자들에게 설득해 주길 소망한다. 국민의 고통이 더 커지기 전에.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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