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밥 먹는 10살 산이, 반장 됐다…"허팝 만나고 싶어요"
“라면도 먹고 싶고요, 리소토요. 리소토가 내 ‘최애(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거든요.”2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5층 병동에서 만난 윤산(10)군 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묻자 씩씩하게 답했다. 하지만 산이는 이 음식을 거의 먹을 수 없다. 또래가 즐기는 치킨과 고기는 평생 맛본 적이 없다. 산이는 태어나자마자 ‘가성 장폐쇄’란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장의 운동 신경 발달이 미숙한 병이다. 수술이나 약으로 치료되지 않는다. 가슴에 꽂아둔 중심정맥관을 통해 공급되는 수액 영양이 밥을 대신한다. 산이 엄마가 직접 수액을 놓는다. 평생 이런 보존적 치료를 해야 한다.
3개 공약 내걸어 반장, 다음 목표는
산이는 병원이 집처럼 익숙하다. 돌 때까지 여러 수술을 받으며 병원에 살다시피 했다. 산이 아빠는 한 달에 한번 왕복 10시간 전남 나주집에서 서울대병원까지 차를 몰고 가 한 달 치 수액(15박스)과 필요한 각종 약제를 챙겨온다. 수액을 공급하는 정맥관은 사흘에 한 번씩 소독하고 매주 바늘을 교체한다. 그럼에도 1년에 한두 번씩은 고열로 시작되는 감염이 산이를 괴롭힌다. 관을 제거하고 다시 이식하는 수술 등을 19차례 이상 받았다. 지금도 40도 넘는 열로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돼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다. 다행히 일반 폐렴으로 진단돼 어린이날 전날 퇴원할 예정이다.
그래도 산이는 씩씩하다. 또래보다 작고 말라 ‘땅꼬마’ ‘멸치’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최근에는 학교에서 4학년 반장에 뽑혔다. 경쟁자 5명을 제치고 과반 득표에 성공했다. 마니또ㆍ과자파티ㆍ메타버스 소통 등 3개 공약이 유권자의 마음을 샀다. 내친김에 산이는 전교 회장에도 도전해볼 요량이다. 학교에서 초능력을 주제로 발표할 때 산이는 “나는 갖고 싶은 초능력이 없다.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만족한다. 그래도 하나 가질 수 있다면 달리기를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산이는 장루(인공항문)를 두 개 달고 있어, 전력질주가 쉽지 않다.
“평생 안고 가야 하지만, 매일 즐겁게”
임씨는 “열심히 해도 병이 기적처럼 완치되는 게 아니라 희귀병이란 게 평생 가지고 가는 거란 걸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그는 “가족이 잘 도와 이겨내고 있다”라며 “산이가 체육대회에 참가했다고, 반장 됐다고 가족처럼 기뻐해 주는 의료진 도움도 컸다”고 했다. “부작용, 합병증 있는 아이들도 있는데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려고 한다”고도 했다.
산이와 같은 병을 앓는 수진(8ㆍ가명)이는 대안학교에 다닌다. 음식을 조금씩 먹긴 하는데 토하고 배가 아프면 바로 금식해야 한다. 수진이 엄마는 병원에서 조제해준 수액을 받으러 이틀에 한 번꼴로 보랭 백에 아이스팩을 챙겨 간다. 어릴 때부터 수진이에게 훈련을 시켰는데 아직 장루백을 다루는 게 서툴다. 학교에서 수진이가 장루백을 버리다가 옷에 튀면 전화가 오고 엄마가 달려가 옷을 갈아 입힌다.
수진이 엄마가 가장 속상한 순간은 아이가 “나는 왜 이렇게 달라?” “교수님이 언제쯤 다 낫는다고 해?”하고 물어올 때다. 그래도 엄마는 “예전 같으면 이런 애들이 못 먹고 하늘나라 갈 수도 있었겠다 싶다. 영양을 줄 수 있는 수액이 있어 감사하다”라며 “학교도 못 갈 줄 알아 홈스쿨링을 생각했는데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이건희 사업이 희망, 여러 지원 손길
문진수(소아청소년과 교수) 서울대병원 이건희 소아암ㆍ희귀질환사업단 공동연구사업부장은 “장 빼고 문제가 없는 애들이라 잘 도와주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지만, 전국에 환자가 100명이 안 되는 희귀병이라 일반적인 정부 지원으로는 연구가 어렵다”라고 했다. 이어 “희귀질환과 소아암을 타깃으로 하는 펀드(기부금) 덕분에 연구할 수 있게 됐다”라며 “법ㆍ제도를 마련하는 데 발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황수연(ppangshu@joongang.co.kr)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