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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화의 마켓&마케팅] 인간미 부족한 브랜드는 시기심과 샤덴프로이데 일으켜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최근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 등 한국에서 수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거둔 글로벌 명품업체가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거나 얼마 안 되던 기부액마저 줄였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졌다. 서로 경쟁하듯 가격을 인상하고 고객을 줄 세우던 기업의 인색한 모습에 대중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부와 명예, 야망을 상징하는 사치의 영역이라는 특성 탓에 명품업체에서 이타적인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의 차갑고 인색한 이미지는 고객에게 고스란히 전이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기부에 인색한 명품들
고객에겐 차갑고 인색한 이미지
디지털 시대엔 따뜻함이 더 중요

구찌 입은 남성은 어떤 느낌일까

한 실험에서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남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인상을 물었다. 사진 속 남성은 한 그룹에서는 평범한 파란색 티셔츠를, 다른 그룹에서는 구찌 로고가 크게 장식된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구찌 티셔츠를 입은 남성은 배려심과 따뜻함이 훨씬 적게 느껴지고 우쭐대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 담당자를 선발하는 모의 채용에서도 취미나 관심사에 프라다, 포르쉐 등을 언급한 지원자는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서 다양한 부서 직원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직무에 맞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수잔 피스크 교수는 고정관념 내용 모델(Stereotype Content Model)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4개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 모델은 유능함(competence)과 따뜻함(warmth)의 두 개 차원으로 집단을 분류하고 각 집단에 대한 인식과 감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유능함은 지적 능력, 성실성, 기술력 등을, 따뜻함은 선한 의지와 협력적 태도, 친근감 등을 의미한다. 유능함과 따뜻함을 모두 갖춘 브랜드는 소비자의 사랑과 존경을 받지만, 능력과 따뜻함이 모두 부족한 브랜드는 골칫덩어리로 여겨진다. 따뜻한 느낌을 주지만 역량이 부족하면 도움이 필요한 동정의 대상이, 유능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브랜드는 질시의 대상이 된다.



피스크 교수는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배려와 인간미가 부족한 브랜드는 시기심과 함께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샤덴프로이데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쾌감을 느끼는 심리를 뜻하는데, 시기의 대상이 곤경에 처하면 냉담하게 반응하고 은근히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많은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인색했던 기업의 실수나 불운이 통쾌감을 주는 것이다. 친근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 상대가 위기에 처하면 걱정하고 응원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불가리와 세이브더칠드런의 협업

주얼리 브랜드 불가리와 세이브더칠드런의 협업. [사진 각 기업]
시기가 아닌 존경의 대상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선한 의지를 분명하고 일관되게 보이는 것이다. 주얼리 브랜드 불가리의 경우 2009년부터 국제 아동권리기관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파트너가 되어 전용 컬렉션 라인을 만들고 수익 일부를 후원하고 있다. 아동의 교육 불평등, 빈곤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세계 각지에서 진행하며 현재까지 37개국 200만 명 이상 아동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랜 기간 유지한 포용적 활동은 특수층만이 누리는 명품 브랜드의 배타적 이미지를 상쇄해준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MB&F의 M.A.D.(Mechanical Art Devices) 갤러리. [사진 각 기업]
명품 소비자가 진솔한 상대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자신을 과시하거나 인정받기 위해 고가품을 구매한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는 제품과 브랜드의 차별적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정으로 명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다. 한 연구에서는 최고급 자동차를 타는 사람이 자동차의 성능, 디자인에 관한 전문성을 보일 때 따뜻한 느낌이 반감되는 효과가 사라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품의 본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고객이 인플루언서 역할을 한다면 명품 소비에 관한 편견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MB&F는 시계학(Horology)에 열정을 지닌 고객 커뮤니티를 핵심 자산으로 꼽는다. M.A.D.(Mechanical Art Devices) 갤러리와 소셜미디어, 책자를 통해 시계 기술과 예술성에 몰입한 고객의 인지적 욕구를 충족시킨 것을 성공의 비결로 여기기 때문이다.

콧대 높은 애플의 차고 창업 스토리

애플의 언더독(Underdogs) 광고. [사진 각 기업]
자칫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는 IT, 금융 브랜드도 인간미를 더할 때 고객과의 관계가 강화된다. 정상에 오른 기업이 사업 초기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군분투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부르고 정서적 연결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콧대 높은 브랜드 애플도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해 IBM과 같은 거대 기업에 도전한 스토리가 고유한 정체성의 근원이다. 2019년부터는 허술하고 산만해 보이지만 정감 가는 직원들이 엉뚱한 아이디어를 애플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완성해가는 ‘언더독(Underdogs)’ 광고 시리즈도 내놓고 있다.

마스터카드의 프라이스리스(Priceless) 캠페인. [사진 각 기업]
비자(VISA)와 함께 세계 신용카드 시장을 이끄는 마스터카드는 1997년부터 이어온 프라이스리스(Priceless) 캠페인으로 유명하다. 편리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여타 경쟁자와 달리 마스터카드는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을 선사하는 브랜드’를 지향하며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야구장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 연인과의 특별한 데이트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작위로 선별한 고객에게 깜짝 선물을 주는 ‘프라이스리스 서프라이즈’ 캠페인으로 우버 무료 사용권부터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만남, 그래미 시상식 VIP 초대권까지 크고 작은 추억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은 생활의 편리성을 높인 만큼 누군가와 한마디 나눌 필요 없는 고립된 세상을 만들었다. 외로움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시기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브랜드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혁신적인 제품, 화려한 디자인을 넘어 소비자와 교감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일 때 기업의 온기가 느껴진다. 유능하면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브랜드가 필요한 때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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