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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마당집 1일 개관…유홍준 “내 젊은 시절 스승이자 은인”


30일 오후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백기완 기념관 '백기완 마당집'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선생과의 오랜 인연을 털어놓았다. 강정현 기자
“백기완 선생님이 2021년 돌아가시고 이 집을 어떡할까 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위로 받고 힘도 얻은 공간이니까 그 의미를 살려가자 했죠. 3년 만에 이렇게 만들어지고 보니 선생님 살아계실 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유홍준)

서울 혜화역 3번 출구 골목 안쪽 2층 벽돌집. 1990년부터 ‘통일문제연구소’라는 현판을 달고 재야 학자·운동가·노동자들의 사랑방 구실을 해온 곳이다. 이곳이 ‘백기완마당집’이라는 이름의 기념관 겸 전시·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일평생 통일·노동운동과 민중문화 살리기에 헌신한 그의 뜻을 기리는 데 개인 6831명과 숱한 단체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노동절(5월1일) 정식 개관을 앞두고 30일 신학철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과 명진 스님(전 봉은사 주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청장) 등이 이곳을 찾았다. 1층은 백기완의 발자취와 사진·유품들로 이뤄진 상설전시장, 2층은 특별전 공간이자 각종 강연·공연에 활용할 수 있게 꾸몄다. 1·2층을 잇는 계단 벽면이 숫자와 사건들로 빼곡하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부터 89세를 일기로 영면하기까지 선생의 연보와 같은 시기 주요 민중·사회운동을 병렬해 한눈에 격변의 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백기완마당집 개관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백기완마당집 1층 상설전시관에서 관계자와 취재진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백범사상연구소와 통일문제연구소를 거쳐 새롭게 꾸며진 백기완마당집은 1층 상설전시관과 2층 특별전시관으로 구성됐으며, 5월 1일 문을 연다. 뉴스1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30일 오후 서울 혜화동 '백기완 마당집'에서 그가 직접 옮겨쓴 백기완의 장편시 '묏비나리'를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유홍준 전 청장이 전시장을 둘러보다 벽면의 한 게시물을 가리켰다. 달력포장 골판지 뒷면에 손글씨로 길게 쓴 시 ‘묏비나리’다. “선생님 1주기 앞두고 코로나19로 자가격리 중에 이 집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고민하다가 옮겨 쓴 거예요. 1980년 백 선생이 계엄법 위반으로 수감 중에 5·18을 추모하며 쓴 장편시인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전에 해당하죠.”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절개, 그리고 불의를 참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에겐 따뜻했던 분”이라고 선생을 회고한 그가 각별한 인연을 털어놨다. 첫 만남은 유 전 청장이 서울대 미학과 3학년이던 1969년 봄. 당시 선생은 백범사상연구소를 이끌며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 반대 투쟁 중이었다. 당시만 해도 학생운동이 재야 운동세력의 가장 든든한 원군이던 시절. 각자 자리에서 반독재투쟁을 벌이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나란히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에 백기완은 유 전 청장의 어려운 형편을 감안해 여동생을 연구소에 취직시켜줬고, 출판사에 그의 첫 일자리를 주선해줬다.

“그렇게 들어간 금성출판사에서 미술 선집으로 실력 발휘를 한 덕에 이후 잡지 『공간』과 중앙일보의 『계간미술』에 유경험자로 채용될 수 있었죠. 결국 내가 미술평론가·미술사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게 넓게 보면 백 선생 덕분입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딴 길 간다고 나무라신 적 없고, 오히려 ‘네가 네 할 일을 하면 그게 나라와 민족에 힘이 된다’ 하셨죠. 사람들한텐 늘 ‘홍준이처럼만 부지런해라’고 하시며…. 제 젊은날의 스승이자 은인같은 분입니다.”

약 60년 된 주택을 이충기 서울시립대 교수가 전시관에 맞게 리모델링 했고, 사진작가 노순택이 전시자문을 맡았다.1층 한쪽은 ‘옛살라비’라는 이름으로 선생의 생전 근무실을 87년 민주화투쟁 때 입은 흰옷, 백범 김구의 글씨 액자 등 각종 유품으로 꾸몄다. 옛살라비란 고향의 순우리말. 이 밖에도 ‘새내기(신입생)’ ‘쭉난길(고속도로)’ ‘아리아리(파이팅)’ 등 그가 발굴한 순우리말이 교육용 낱말카드로 걸려 있어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1950년대 농민운동 당시 시골 어르신한테서 파도의 우리말이 ‘몰개’라고 배운 뒤로, 평생 순우리말 퍼뜨리기에 힘쓰셨죠. ‘뉴스’를 ‘새뜸(새로 떴다는 의미)’ ‘바이바이’를 ‘잘잘’(잘 가라, 잘 있겠다)로 바꾸자고 하셨어요. 중앙일보가 연말에 선정하는 ‘새뚝이’(혁신적 인물)도 당시 이헌익 문화부장이 백 선생님한테서 받아가신 새 단어예요.”(재단의 채원희 간사)
백기완(1933~2021)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던 인장. 5월1일 개관하는 '백기완마당집'에 진열됐다. 사진 백기완노나메기재단

'백기완 마당집' 개관을 앞두고 30일 이곳을 찾은 손호철 교수, 신화철 화백, 명진 스님, 유홍준 교수(왼쪽부터)가 신화철의 그림 '백기완 부활도, 산 자여 따르라'(2021) 앞에 나란히 섰다. 강정현 기자
1987년 시국 집회 시절부터 교분을 나눴다는 명진 스님은 “어떤 의미에선 사회변혁운동 이상으로 우리 사회에 이정표를 세우신 게 우리 말글을 살리고 퍼뜨리신 것”이라며 “그를 잘 몰랐던 젊은 세대도 이 공간을 통해 알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 전 청장은 “최근에 홍세화 선생도 타계하는 등 한시대가 마감하는 느낌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백 선생이란 분은 마치 3·1 운동처럼 멀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뜨거웠던 시절에 굴하지 않았던 이런 분이 있다는 게 삶에 큰 위안이 되지 않겠나. 선생이 30년간 숱한 이들의 눈물과 피땀을 위로한 이 공간을 잘 가꾸고` 물려주다보면 언젠가 근대문화유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관 특별전은 ‘비정규직 노동자 백기완’. 마지막 20년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등 비정규직의 투쟁 현장에서 노구를 이끌며 함께 했던 모습을 사진과 육필 원고 등으로 만난다. 전시장은 화~토요일 오후 1시~7시까지 운영한다. 6일엔 후원회원 등과 함께 하는 문화행사 ‘백기완마당집 집들이’가 열린다.



강혜란(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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