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후보들 "중립기어 안된다"…아예 대놓고 '친명 경쟁'
‘ 국회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국회법 20조의2)
2002년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과 함께 자리 잡은 ‘국회의장의 중립성 원칙’이 최대 위기에 처했다. 22대 국회에서 과반을 훌쩍 넘긴 더불어민주당 내 국회의장 후보자들이 잇따라 ‘탈(脫)중립’을 공언하면서다.
최근 국회의장직 도전을 선언한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5선)은 25일 MBC라디오에서 “여야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그럴 때는 국회의장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협의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6선 고지에 오른 추미애 당선인도 지난 2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장은 ‘중립 기어’를 넣으면 안 된다. 운전자가 ‘중립 기어’를 넣으면 타고 있던 승객은 다 죽는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도 비슷하다. 6선 조정식 의원은 24일 “(22대 전반기) 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선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했고, 5선 우원식 의원도 25일 출사표를 던지며 “국회법이 규정한 중립의 협소함을 넘어서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장 중립은 87년 체제 이후 몇 차례 제도적 보완을 통해 가까스로 확립됐다. 박준규 전 의장(1998년 8월~2000년 5월) 시기 국회운영개선위원회가 제안한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 제안이 2002년 국회법에 명문화되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2006년 임채정 전 의장을 필두로 여대야소(與大野小) 국회에서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내정하는 관행도 사라졌다. 2014년 시행된 국회선진화법에서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하게 제안하면서, 의장이 당의 압박에 휘둘리지 않을 명분도 주어졌다.
어렵게 자리매김한 국회의장 중립의 역사성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 것은 ‘강한 국회의장’을 원하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요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검찰개혁’ ‘언론개혁’ 법안이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의 중재에 지지부진하면서 4년 내내 ‘180석 줬는데 뭐 하냐’는 비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법안 자체의 위헌성·반민주성보다는 책임의 화살을 의장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 팬카페인 ‘재명이네 마을’에선 “더 이상 수박 국회의장은 필요 없다” “의장도 당심으로 뽑아야 한다” 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조국혁신당과의 선명성 경쟁도 민주당을 더 일방향으로 몰아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같은 ‘국회의장 편향성’에 대해 민주당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박지원 민주당 당선인은 25일 CBS라디오에서 “‘민주당에서 나왔으니 민주당 편만 든다’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며 “의장은 국민이 원하는 대로 민심대로 중립성을 지키면서 가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출신인 조응천 개혁신당 의원도 24일 “(국회의장 후보들의 최근 행태는 운전기사가) 브레이크와 핸들마저 떼어버리고 가속 페달을 직접 밟고 폭주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의장이 다수당 편만 들겠다는 건 아예 정치를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국회의장은 스포츠 경기의 심판과 같다. 심판이 특정팀만 편들면 경기가 제대로 되겠나”라며 “독립적으로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총선에서 45.04%의 유권자는 다른 정당을 찍었다”며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의미는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재.오현석(kim.j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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