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중앙시평] 다양성을 인정해야 풍요로워진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버스에서 공익캠페인을 본 적 있다. 피부색을 살색이라고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피부색은 개인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인종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우리 민족의 피부색을 살색이라고 한다면 우리 중심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일 수 있다. 이는 반세기 전이라면 나오기 어려운 얘기였다. 우리 세대는 어렸을 때 반만년 역사의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비극을 거친 후 내세울 것 없이 춥고 가난했던 시절엔 파란 가을 하늘과 유구한 역사의 단일민족이라는 게 위로가 됐었다.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면서 우리를 결속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그때는 외국과의 교류가 드물고, 외국인을 만나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이렇게 우리 안에 갇힌 상황에서는 베이지색을 살색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했다.

늑대가 있어야 사슴이 건강하듯
다름 인정·포용하는 사회가 건강
미래는 상호존중과 배려의 시대
다양성 품는 공존 확대해 나갈 때

이런 상황은 이제 전적으로 달라졌다. 지난 연말 방한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게오르기에바는 한국이 외국에서 더 많은 인력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구 감소에 대응해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조언이었다. 결혼이나 취업 등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은 지금도 많이 있으니, 우리는 이미 그 길에 들어서 있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고 노령화로 인구 구조가 변화하니 외국 출신 인구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좋건 싫건 그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우수한 외국 인력을 유입하려면 이민 정책이나 사회 복지뿐 아니라 언어,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간단치 않은 일이지만, 이걸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글로벌 악몽을 꾸어야 한다. 잘 대처하기만 하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약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왜 적극적으로 다양성을 포용해야 하는가? 잠시 눈을 돌려 생명 세계를 보자.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살았던 늑대는 인간이 못마땅하게 여겼던 탓에 1926년에 멸종됐다. 포식자가 사라지면 초식동물의 평화로운 낙원이 펼쳐질 것 같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늑대가 사라지자 사슴이 증가했고, 이들이 풀과 낙엽 식물을 마구 먹어댔다. 숲이 황폐화하고 초목이 죽으면서 땅이 침식됐다. 물가의 나무가 사라지면서 비버도 함께 사라졌다. 가뭄으로 풀과 초목이 부족해지면서 사슴이 집단 아사하기도 했다. 서식 환경이 처참히 바뀌자 멸종위기종 보호법이 제정됐고, 1995년부터 30여 마리의 늑대를 캐나다에서 포획하여 옐로스톤에 순차적으로 방출했다. 그 후 사슴 수가 줄면서 공원의 식물군이 변하고 물가 식물도 살아났다. 이 식물로 집을 짓는 비버 수가 늘었고, 비버가 건설한 댐은 물속에 사는 여러 동식물의 서식처가 됐다. 이후 100여 마리의 늑대가 안정적으로 생존하면서 죽어가던 생태계는 이전의 건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는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초식동물만 있을 때 평화롭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건 겉모습일 뿐이다. 사슴을 잡아먹는 늑대가 있을 때, 사슴도 오히려 건강할 수 있다. 다양성의 토대 위에서만 건강한 공존이 이뤄지고, 이런 공존 위에서 생태계가 건강할 수 있다. 이 다양성은 단순히 서로 다른 여러 종류가 같이 있다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사슴과 토끼와 노루 등 여러 초식동물이 있다고 해서 건강한 게 아니라, 초식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육식동물이 필요하다. 유사한 종류의 다양성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다양성이 필요하다. 단일 혈통의 순수도 좋지만, 다양성을 포용하는 건강한 공존이 이제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생태계와 달리 우리는 여기에 상호존중과 배려의 미덕을 추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꽤 많은 사람이 ‘다른’을 ‘틀린’이라고 말하지만, 바로잡아야 할 틀린(wrong) 것은 인정해야 할 다른(different) 것과는 다르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점점 더 서로 다른 인종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단정 짓지 말고 포용해야 한다. 문화 배경이나 신념 체계가 나와 다르다고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늑대를 사악한 존재로 규정하고 멸종시키는 것처럼 폭력일 수 있다. 다만 다를 뿐이니,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배제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에서는 “함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은 다양성과 다원주의가 강화되고 우리 공동의 인간성이 풍요로워지는 사회를 비전으로 품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서 포용적이고 타인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하며, 다른 문화와 인식체계, 생활방식과 세계관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상호존중과 배려의 영역을 가족, 이웃, 소속 집단, 민족으로 한정하지 말고 인류와 생태계 전체로 확대하는 시대가 우리의 미래여야 한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