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부터 광주까지, 비엔날레 이제 달라질 때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그런데 이것을 바라보는 한국인 일행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와, 장우성과 이쾌대 그림이 인기 많네”하고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데 ‘제3세계’ 작품들의 일부분으로서 섞여 있는 게 뭔가 기분 좋지 않네”라는 이들도 있었다.
‘외국인’을 주제로 한 베니스비엔날레
‘글로벌 사우스’는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을 아우르는 말이다. UN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이기에 여기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된다.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도 이를 의식했는지 “엄밀히 말하면 더는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지 않는 싱가포르와 한국의 작가들도 이 섹션에 포함되었는데, 이는 (장우성과 이쾌대 등의) 작가들이 작품을 창작할 당시에는 이른바 제3세계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공식 설명문에서 언급했다.
1940년대에 우리는 최빈국 식민지였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장우성과 이쾌대의 그림이 이 섹션에 걸려있는 것을 보는 기분은 묘하다. 우리가 과거 제3세계였다는 자각, 그러나 이제는 ‘선진국’이며 제3세계로 묶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런데 그런 식으로 다른 제3세계 나라들과 ‘구별 짓기’를 하는 태도가 올바른 것인가 하는 자문, 서구인의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한 기쁨과 ‘우리는 기껏 명예 서양이 되고 싶은 것인가’ 하는 자괴감의 교차 등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 복잡한 마음은 한국인이 베니스비엔날레를 대하는 마음, 나아가 서구 진보 진영이 지배하는 국제 문화예술의 장을 대하는 마음일 것이다.
서구 예술계, 한국 다루기 어려워해
그렇다면 서구에 의해 쉽게 규정되지 않는 변종인 동시에 경제적·문화적 힘을 갖춘 한국이야말로 늘 비슷한 담론을 되풀이하고 있는 서구 문화예술의 장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역시 ‘비서구와 소수자,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서구인 관점에서 본 비서구와 소수자’라는 담론의 반복이었다. 서구 남성 위주의 유명 작가들 대신 세계 방방곡곡의 미처 몰랐던 좋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보여준 것은 분명 성과였다. 그러나 담론이 식상해서 울림이 크지 않았다.
문제는 한국의 대표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 역시 담론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는 올해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의 외국인 큐레이터가 된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뮤지엄 관장이 총감독을 맡았었다. 제1부는 현대의 모든 압박(정치권력부터 소수자에 대한 편견까지)에 대한 저항과 연대를, 제2부는 토착 문화에 기반을 둔 탈현대성을, 제3부는 후기 식민주의를 다뤘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도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당시 이숙경 감독은 작가 소개에 국적 대신 그들이 태어난 지역과 지금 활동하는 지역을 넣어 그들의 초국가적이며 복합적인 정체성을 강조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매력적인 작가도 많이 발굴했다. 이러한 장점 또한 이번 베니스비엔날레가 이어받았다. 단점이나 장점이나 닮은꼴인 것이다.
새 담론 제시 못하는 비엔날레들
한국에서는 지자체마다 우후죽순 생기면서 관광용 지역 축제 정도로 오해되고 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비엔날레의 정신은 미술관 전시로는 힘든 대규모 국제전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담론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미술계에서는 이제 세계 비엔날레들이 담론을 이끌지 못하고 급변하는 현실에 뒤처지고 있다는 탄식과 비엔날레 무용론까지 나타나고 있다.
“베니스, 광주, 그밖에 주요 세계 미술제들이 너무 크고 막연하고 비슷한 담론을 되풀이해온 게 사실입니다.”라고 박양우 광주비엔날레제단 대표도 말했다. 그는 베니스비엔날레의 공식 병행전시인 광주비엔날레 30주년 아카이브 전시 ‘마당-우리가 되는 곳’을 위해 베네치아를 방문 중이었다. 그는 덧붙였다. “그래서 올해 광주비엔날레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에게도 그 점을 신경 써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좀더 특화된 주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저래 달라질 길을 모색 중입니다.”.
‘변종’ 한국은 문화예술계에서 수십년째 되풀이되어 온 서구 진보 주도 담론을 넘어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역량이 있다. 그 발판이 한국의 비엔날레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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