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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문화 싫었다"…'알쓰' 경찰서장이 관두고 와인병 든 사연

조강원 소믈리에(전 일산동부경찰서장)가 25일 오후 제2의 직장인 롯데마트 '보틀벙커' 서울역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총경 출신인 조 소믈리에는 지난해부터 와인수입사 레뱅에서 소믈리에로 근무 중이다. 강정현 기자
조강원(59)씨는 1년 차 신출내기 소믈리에다. 그런데 이 사람, 2년 전만 해도 500명을 지휘하는 경찰서장이었다. 직급은 ‘경찰의 꽃’이라 불리는 총경. 1983년 경찰대 3기로 입학한 조 소믈리에는 2022년 6월 일산동부경찰서장을 끝으로 명예퇴직했다.

그는 이제 제복 대신 진녹색 앞치마를 두르고 와인을 판다. 약장(略章)이 주렁주렁 달렸던 가슴팍에는 ‘I CAN SPEAK ENGLISH’라고 적힌 단출한 핀 버튼이 꽂혀 있었다. 25일 주류 전문매장 ‘보틀벙커’ 서울역점에서 만난 조 소믈리에는 “주변에 별로 알리지 않아서 우연히 고객으로 만난 경찰 시절 동료들이 깜짝 놀란다”며 싱긋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 소믈리에의 주량은 와인 반 병. 경찰 재직 시절에도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폭탄주를 부어라 마셔라 하는 문화가 정말 싫었다”며 “그나마 페이스대로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술이 와인이었다”고 말했다.

경찰 재직 시절 그는 외사경찰의 길을 걸었다. 1994년 프랑스 리옹 국비 유학, 2004년 인터폴 본부, 2013년 호주 총영사관 등 해외 파견과 2018년 경찰청 외사기획정보과장 근무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와인에 빠져들었다.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WSET 2급)을 딴 건 퇴직한 이후다. 조 소믈리에는 “와인을 향한 열정도 30년에 걸쳐 숙성된 것 같다”고 했다.



조강원 소믈리에(59)가 2018년 금천경찰서장 재직 시절 동료에게 받은 감사패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조강원 소믈리에가 25일 오후 롯데마트 '보틀벙커' 서울역점에서 칠레 와인 '끌로 아팔타'를 소개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조강원 제공, 강정현 기자

조 소믈리에는 “대테러 등 맡은 소임에서 성과를 냈다고 자부한다”면서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힘들었다”고 경찰 생활을 회고했다. 한시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시민을 만나야 하는 업무가 버거울 때가 많았다고 한다. 퇴직 후에도 경찰 관련 직업과 거리를 둔 이유다. 그는 “냉철한 이성이 우선하는 게 경찰이라면 와인은 느슨한 감성이 작용한다”며 “늘 긴장 속에서 살다가 이완된 상태로 고객을 즐겁게 만드는 일을 하니까 재밌다”고 했다.

재취업 과정에서 총경 이력은 독이 되기도 했다. 지휘하고 보고받는 관리자 습관이 몸에 뱄을 거란 의심 탓이었다. 연거푸 서류와 면접에서 탈락하고 난 뒤에서야 간신히 현재 수입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때론 어린 선배에게 혼나기도 하면서 뻣뻣하게 굳은 ‘공무원 근육’을 풀 수 있었다.

단골도 생겼다. 그가 추천한 프랑스 와인을 샀다가 재구매하러 온 프랑스인이라고 한다. 조 소믈리에는 “김치 파는 미국인이 한국인한테 여수 갓김치를 추천하고 나서 맛있었다고 칭찬받은 셈이니까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최고령 신참이 된 지 1년. 와인 라벨 프린트 출력도 제대로 못해 쩔쩔매던 시기를 통과해 그는 28세 동료와 스스럼없이 지낸다. “다시는 유니폼을 못 입을 줄 알았는데 또 입게 됐네요. 그런데 훨씬 자유로운 느낌입니다.”




이영근(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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