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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한국의 기적 멈출까 안타깝다”…떠날 때까지 나라 걱정

노재봉
“기적의 대한민국이 자칫 멈출까 봐 안타깝다.”

23일 별세한 노재봉(사진) 전 국무총리가 올해 초 제자들과의 공부 모임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 나라를 걱정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1년 전 혈액암 판정을 받고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병세가 악화해 23일 밤 서울성모병원에서 타계했다. 노 전 총리는 병원을 옮겨 다니며 혈액 투석치료를 받는 중에도 “윤석열 정부가 건설적으로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는 말을 주변에 많이 했다고 한다.

노 전 총리가 몸담았던 노태우 정부는 80년대 말~90년대 초 격동하는 국내외 정세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민주화 물결과 소련 해체의 난국을 풀어나가는 데 노 전 총리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시절 제자이자 노태우 정부 청와대 비서실에서 함께 일한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통화에서 “뛰어난 안목과 식견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데 중추가 되신 분”이라고 했다.

노 전 총리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브리검영대를 거쳐 뉴욕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1805~1859)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5년 『시민민주주의』라는 저서로 토크빌 사상을 국내에 소개했다. 200여년 전 민주주의가 태동할 즈음에 활약한 토크빌은 “다수에 의한 민주주의가 독재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91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당·정 회의에 참석한 노재봉 전 국무총리. [중앙포토]
‘학자 노재봉’은 정치권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양김’(김영삼·김대중)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이끌던 이철승 신민당 대표에게 ‘중도통합론’을 조언했고, 6월 항쟁이 한창이던 1987년에는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직선제 개헌이 담긴 6·29 선언문 작성에도 참여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88년에 대통령실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1990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소 정상회담에서 현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노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수교원칙을 합의하는 데 기여했다. 1991년 1월 국무총리에 취임했지만, 명지대생 강경대 사망사건과 수서 택지 특혜분양 사건 등이 터지며 4개월 만에 총리직을 내려놨다.

노 전 총리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한국자유회의’라는 보수주의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조성환 전 경기대 교수 등이 멤버다. 토론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 문제를 짚어낸 『정치학적 대화』(2015년)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2018년)을 펴냈다.

노 전 총리 장례는 3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이다. 유족으로는 서울대 동기인 부인 지연월(88) 씨, 미국 거주 중인 딸 모라(62)씨, 그리고 아들 진(57)씨가 있다.





김효성(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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