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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프레리 밴드 포타와토미

박춘호

박춘호

지난주 연방 내무부는 일리노이 역사에 있어 큰 결정을 내렸다. 주 북부 지역의 130에이커를 신탁(trust)으로 묶어두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 결정은 원주민 보호 구역으로 설정하기 위한 행정적인 절차다. 이 절차를 통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게 자치권에 버금가는 권한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치권에는 각종 세금 혜택과 연방 정부와의 계약을 체결하는데 있어 우선권을 주며 토지 사용 허가권 등이 포함된다. 또 자치법과 사법권도 들어갈 수 있어 만약 계획대로 실행될 경우 일리노이에서 최초로 원주민 보호 구역이 설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사는 미국이 서부로 영토를 확장할 때부터 기인한다.  
 
18세기 초반부터 미국은 서부로의 영토 확장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막대한 영토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중서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원만한 과정은 아니었다. 당연히 무력 충돌이 잦았으며 12개의 조약 등을 통해 원주민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린빌 조약이다. 1795년 8월3일 체결된 이 조약은 미군과 원주민들의 오하이오주 Fallen Timbers 전투의 결과로 체결된 것이다. 이 조약의 내용 중에는 현재 시카고 강을 포함한 지역도 들어가 있다. 즉 시카고 강과 미시간 호수가 만나는 지역의 6평방마일 지역을 포타와토미 부족이 미국에 넘긴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연방 정부가 현재의 시카고 지역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시카고 역사의 시작이 가능했던 것이 원주민들과의 조약 때문이라고 봐야 하는 점이다. 반면 이 지역에 오래 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은 외곽 지역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원주민들이 스스로 땅을 내주고 이주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 세력의 무력으로 인해 고향에서 쫓겨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일리노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레리 밴드 포타와토미 부족 역시 서쪽으로 거주지를 옮겨야만 했다. 1829년 프레리 두 치엔 조약으로 인해 현재의 북부 일리노이 지역에 해당하는 땅을 미국 정부에 양도했다. 이 곳에는 프레리 밴드 포타와토미 부족과 부족장 샤브-에-네이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1849년 부족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주정부가 이 땅을 점령해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일리노이를 떠나 미시시피강 서안의 아이오와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고 소수의 부족민만이 일리노이 고향에 거주해 왔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100여년 동안 빼앗긴 토지를 되찾기 위해 1에이커씩, 1에이커씩 토지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원주민들의 노력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방 의회에서는 지원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작년 연방 의회에서는 포타와토미 부족의 영토 확보를 위한 구제안을 통과시켰다. 구제안은 궁극적으로 원주민 보호 구역으로 설정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상정한 로렌 언더우드 연방 하원 의원은 “샤브-에-네이 보호구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탁으로 우선 설정한 뒤 원래의 토지 소유주에게 권한을 이양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일리노이 최초의 원주민 보호구역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주 정부 차원의 지원도 속속 나오고 있다. 프레리 밴드 포타와토미 부족이 살고 있던 지역 내에 있는 샤보나 레익 주립 공원을 부족에게 넘겨주자는 법안도 주의회에 상정됐다. 만약 이러한 조치들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보호구역에의 사법권과 경찰권, 천연 자원 관리 등도 모두 원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연방 내무부는 이러한 전환에 대해 "내무부는 신탁으로 확보한 토지를 원주민들에게 이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원주민들의 자기 결정권과 주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원주민 부족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확보하고 부족을 보호하며 부족 특유의 방식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리노이 역사에서 원주민들을 제외할 수는 없다. 일리노이라는 이름 자체가 원주민 언어에서 왔기 때문이다. 도로명이나 도시명 등 일상 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단어들 중에도 원주민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 매우 많다. 포타와토미가 그렇고 알공퀸, 마이애미, 오지브웨, 치페와, 오타와, 호청크, 폭스, 키카푸스 등이 모두 원주민 부족의 이름들이다.  
 
일리노이강변에 위치한 스타브드록이 그렇듯이 원주민과의 갈등은 우리 역사 속 깊이 존재하고 있다. 시카고 이주민들의 첫 정착지라고 할 수 있는 포트 디어본이 1812년 함락된 사건은 일리노이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대표적인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200여년이 지난 후에야 일리노이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선대부터 살아 왔던 영역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을 지켜보며 이들이 예전처럼 중서부를 호령하고 살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자신들만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일리노이만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들 역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기에. (편집국)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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