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용의 시선] 75세 이상, 넷 중 한 명은 아직도 일한다
황씨처럼 고희(古稀·70세)를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생활 전선에 뛰어든 ‘워킹 시니어(Working Senior)’가 이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70세 이상 취업자는 지난해 184만9000명으로 5년 새 51.6%(63만명) 증가했다. 연간 고용률은 2018년 24.3%에서 가파르게 올라 지난해 처음으로 30%대를 기록했다. 특히 통계청은 75세 이상 고용률을 지난해 처음으로 따로 산출했는데, 24.3%나 됐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4명 중 1명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단지 워킹 시니어들의 노동 의지가 커졌기 때문만으로 볼 수는 없다. 임금수준이 낮은데 노동 강도는 높아 청년층이 꺼리는 소위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을 중심으로 고령층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새로 대체할 인력이 없다 보니 기존 근로자가 나이가 들어도 고용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실제 지난해 70세 이상 취직자의 산업별 분포(월평균)를 보면 농업·임업 및 어업(30%),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23%),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8%), 도매 및 소매업(7%) 중심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하반기 주요 산업(300인 미만) 중 구인난으로 미충원 인원(구인인원-채용인원)이 높았던 업종인 ▶광공업(4만1334명) ▶운수 및 창고업(1만6185명) ▶도매 및 소매업(1만4070명)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1만1941명)과 유사하다.
주요 미디어에 비친 워킹 시니어의 모습은 서글프다. 허드렛일을 하고, 저임 노동에 시달리며, 생계를 유지하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터로 내몰린다. 하지만 일하는 노인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궁핍한 노후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지만, 이들이 일터예 계속 머무르는 것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시대에 워킹 시니어의 노동력 활용은 한국 경제·사회가 지속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워킹 시니어의 상당수는 과거 70대와 달리 건강하고, 지식이 풍부하며, 정보기술(IT)에도 능숙하다. 청년이 기피하는 업종이나 저출산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일자리 공백 문제를 시니어 인력으로 완화할 수 있다. 실버택배·실버세차·노노(老老)케어처럼 젊은 세대는 꺼리지만, 워킹 시니어는 주저하지 않는 일도 많다. 이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은 은퇴 후 노인 빈곤 문제를 덜어준다. 마침 고령친화산업도 확장하고 있다. 노인들의 생산력과 소비력을 동시에 올린다면 저성장, 노동력 부족, 연금 고갈 등 한국의 많은 난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일자리 구조 변화와 ‘노인이 일하는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일정한 나이를 고령의 기준으로 삼아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는 제도를 손봐야 한다. 65세 이상인 법정 노인 기준을 올리고, 고령 인력을 계속 고용하는 기업들은 정부·지자체가 더 지원해야 한다. 고용 유연성 확보도 필요하다. 연공서열식 직급·임금 체계를 바꾸고, 탄력적 근무제 등을 도입해 워킹 시니어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다가올 고령사회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노동력 부족에도 대비할 수 있다. 고령 인구 증가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손해용(sohn.yong@joongang.co.kr)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