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읽는 세상] 현을 위한 아다지오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어 유명해진 곡이다. 이 곡의 연주에는 제1,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참여한다. 성부는 제2 바이올린과 첼로 파트가 각각 두 개로 나뉘어져 모두 7성부로 되어 있는데, 일곱 개의 파트가 각자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서로의 움직임에 대응하고 있다. 특징적인 리듬은 없고, 4분음표로 이루어진 단순한 음형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여기서 조용하면서도 풍부한 표정의 주제 선율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환기시킨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그렇게 끊임없이 흘러간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여러 파트의 음들이 아주 느린 속도로 우주공간을 유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유영하다가 때로는 같은 음으로 합쳐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합쳐져서 두터운 화음을 이루기도 한다. 처음에 낮은 곳에서 조용히 시작된 이들의 유영은 아주 느린 속도로 점점 고도를 높여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모든 음들이 유영을 멈추고 한 곳에서 날카롭고 투명한 화음으로 만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뒤에 곧 숨 막힐 듯 날카로운 침묵이 이어지고, 이렇게 찰라와 같은 침묵이 끝나고 나면 모든 음들이 처음과 비슷한 몸짓으로 느린 여행의 마무리를 짓는다. 음악의 흐름이 마치 아치와 같다. 조용히 시작해 별다른 동요 없이 영원히 지속할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조금씩 고조되다가 어느새 클라이막스에 이르고 날카로운 휴지를 거쳐 조용히 사라진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들을 때마다 장례식 음악으로 이 곡만큼 적합한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음악의 흐름 자체가 우리네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찬란한 클라이맥스 뒤에 오는 짧은 침묵 그리고 조용히 소멸해 가는 음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순간을 맞겠지.
진회숙 /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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