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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가 현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사전적 의미의 책은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으로, 일정한 목적·내용·틀에 맞춰 사상·감정·지식 등을 표현한 글·그림 등이 담겨 있어요. 오늘날 여러분은 교과서·문제집·소설책 등 여러 종류의 책을 종이로 된 책뿐 아니라 전자책(e-book)으로도 접하며 지식을 함양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있죠. 이렇듯 인류는 책을 통해 수천 년 동안 후대에 지식을 전했지만, 귀족·종교인이 아닌 평범한 민중이 책을 자유롭게 읽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필요했어요. 지식이 담긴 책을 빠르고 정확하게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주역 중 하나가 바로 금속활자인데요. 전 세계에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 가장 오래된 서적이 고려시대에 간행된 『직지』예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직지』의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를 찾아 『직지』의 탄생 과정과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 금속활자를 만드는 과정 등을 알아봤어요.
이시온(경기도 홈스쿨링 5)·김민영(충북 청주대성초 6)·김도훈(충북 청주솔밭초 5·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금속활자판으로 복원된 『직지』를 살폈다. 3만여 개의 금속활자가 78개의 판을 구성한다.
지난 2023년 4월 국내 주요 언론은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이 반세기 만에 수장고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일제히 보도했어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인류 역사에 혁명을 일으킨 인쇄술의 역사를 되짚어보기 위해 전시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을 기획했는데, 개막을 하루 앞두고 2023년 4월 11일(현지시각) 열린 언론 행사에서 『직지』가 공개된 것이죠.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인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걸까요. 또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우리나라 언론이 『직지』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직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김도훈·김민영·이시온 학생기자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찾아 장원연 학예사와 만났어요.
이시온 학생기자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 하권의 표지에 있는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로비에는 거대한 책 모양으로 78개의 금속활자판이 전시돼 있어요.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전통 주물 방식인 밀랍주조법으로 복원한 3만여 개의 금속활자를 조판해 만든 『직지』 활자판이죠. 이 활자를 종이에 대고 찍으면 『직지』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직지』는 상·하권으로 이뤄져 있는데,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있는 『직지』 활자판은 관람객이 마주 보고 선 기준으로 왼쪽이 하권, 오른쪽이 상권이에요.




『직지』란 대체 어떤 책일까요. 또 누가 만들었으며 왜 세상에 나왔을까요. 그 답을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은 장 학예사와 함께 제1상설전시관로 향했어요.

청주고인쇄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만든 복제본이 전시돼 있다.
고려의 뛰어난 목판 인쇄술이 금속활자로

먼저 『직지』란 제목의 뜻부터 알아볼까요. 『직지』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란 제목을 줄여 부르는 겁니다. 『직지심체요절』이라고 칭하기도 하죠. 장 학예사가 "백운은 『직지』를 편찬한 고려 말 경한(1298~1374) 스님의 호이고, 화상은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에요. 초록은 중요한 부분만 발췌했다는 뜻이며, 불조는 석가모니 등 부처와 선사·조사 등 큰스님을 뜻하죠. 직지심체는 '참선하여 사람의 마음을 직시하면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불교 용어이며, 요절은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뜻해요"라며 『직지』의 의미를 풀이했어요. 즉, 경한 스님이 부처와 큰 스님들의 가르침 중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모은 책이라는 뜻이죠.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상권과 하권으로 구성됐지만, 현재는 하권만 남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어요. 전시실에선 『직지』 하권을 복원한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청주는 『직지』의 고향이에요. 『직지』 하권 마지막 장에 보면 ‘선광 칠년 정사 칠월 청주목 외 흥덕사 주자 인시’라고 적혀 있어요. 1377년 7월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했다는 의미죠.
발굴 조사를 통해 위치가 확인된 『직지』의 탄생지인 흥덕사는 금당과 석탑이 복원됐다. 청주고인쇄박물관 주변에 있어 함께 돌아보기 좋다.
흥덕사의 위치는 1985년 청주시 운천동 866번지 일대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서원부 흥덕사(書原府 興悳寺)”라고 새겨진 쇠북(금구)과 “황통 10년 흥덕사(皇統 十年 興悳寺)”라고 새겨진 승려의 공양그릇인 발우가 발견되며 밝혀졌습니다. 1984년 12월부터 한국토지공사가 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진행된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가 거둔 성과죠. 옛 흥덕사지는 1986년 5월 7일 사적 제315호로 지정됐으며, 1987~1991년 절의 본당인 금당과 3층 석탑을 복원하고 잔디를 심어 터를 정비했어요. 옛 흥덕사지와 복원한 금당·석탑은 청주고인쇄박물관 부근에 있어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둘러볼 수 있답니다.

바깥 면에 흥덕사라는 명칭이 새겨진 승려의 공양그릇인 발우. 1985년 발굴 조사에서 발견됐으며 흥덕사는 1377년 『직지』를 간행한 곳이다.
민영 학생기자가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를 사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라고 말했죠. 이는 각종 불경과 대장경 간행 등 거대한 국가사업을 뛰어난 목판 인쇄술로 이뤄낸 고려의 저력이 금속활자에도 발현된 겁니다. 대표적인 예가 거란이 침입하자 부처의 가르침으로 국민정신을 통합하여 국가와 국민을 지키겠다며 고려 현종(1009∼1031) 시기에 만든 『초조대장경』(처음으로 새긴 대장경이란 뜻)이에요.

하지만 『초조대장경』은 1232년(고종 19)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죠. 이에 고려 조정은 16년에 걸쳐 『재조대장경』을 만들어 1251년에 완성했어요.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경판이 바로 『재조대장경』을 만들 때 사용한 목판이에요. 다시 만들었다는 의미로 『재조대장경』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경판이 8만여 판이라 해서 '팔만대장경'으로도 불러요.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 경판은 절정에 달했던 고려의 목판 인쇄술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참고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역시 우리나라 문화유산이에요. 8세기 초 신라가 불국사를 중창하면서 석가탑을 세울 때 봉안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입니다.

1200도가 넘는 온도에서 구워야 탄생하는 청자가 고려를 대표하는 예술품인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금속활자 제작에 필요한 불을 다루는 기술은 당시 고려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어요. 금속활자를 만들고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갖춰진 상태였던 겁니다. 여러 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웠던 13세기 고려인들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지식 정보의 확산과 공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금속활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성숙한 문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거죠.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는 약 1200도의 온도에서 청동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약 360도 정도의 온도에서 납을 녹여 만든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강도가 우수하다.

그런데 금속활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지 않나요. 바로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 인쇄술의 혁신자라고 불리는 독일인 사업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입니다. 그는 1440년대에 납으로 만든 인쇄용 금속활자를 틀에 하나하나 심어서 조판하는 방법을 고안했죠. 기존에는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필사나 목판 인쇄가 대중적이었는데,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는 조판 시 활자 배치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시간과 자원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죠. 덕분에 대량의 인쇄물이 저렴하게 공급됐고, 많은 사람이 책을 사서 읽을 수 있게 됐어요. 이는 지식과 정보가 과거에 비해 빠르고 넓게 퍼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그가 인쇄한 서적 중 현존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42행 성서』는 『구텐베르크 성서』로도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인쇄술 혁신의 대명사로 여겨집니다.

1377년 간행된 『직지』는 1455년 간행된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인쇄됐어요. 즉,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은 『구텐베르크 성서』가 아니라 『직지』인 거죠. 내구성도 우리나라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뛰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를 주조하는 데 주로 쓰이는 금속재료는 청동인데, 청동은 구리와 주석(朱錫)의 합금이에요. 반면 구텐베르크는 납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었죠.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를 만들려면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 금속을 녹여야 하지만, 한 번 만들면 오래 쓸 수 있어요. 반면 납은 360도만 넘어도 녹일 수 있어서 가공이 쉽지만, 우리나라 금속활자에 비해 금방 마모되고 흠집이 생길 가능성도 높죠."(장)
고려인들은 1377년 『직지』가 간행되기 전에도 금속활자를 활발히 사용했다. 사진은 금속활자본을 1239년 목판으로 인쇄한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종증도가』.

우리나라 문화유산 『직지』, 왜 프랑스에 있을까

사실 『직지』가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최초의 책은 아니에요. 전시실에는 불교서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금속활자본을 1239년 목판으로 다시 인쇄한 목판본이 있었죠. 즉, 고려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최초의 책을 알 수는 없지만 『직지』가 탄생한 1377년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고려인들이 금속활자를 사용한 겁니다.

도훈 학생기자가 "청주에서 간행한 『직지』 하권을 프랑스가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1896년에서 1899년 사이 당시 주한 프랑스 공사로 근무한 꼴랭 드 플랑시가 『직지』 하권을 수집했고, 1900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서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했어요. 1911년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가 경매에 나온 『직지』 하권을 180프랑에 구입했고, 앙리 베베르의 유언으로 1952년 『직지』 하권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했죠."(장)

당시 우리나라는 1945년 8·15 광복과 1950~1953년 한국전쟁, 이후 전후 수습 등으로 혼란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직지』 하권의 존재는 1972년이 되어서야 고(故) 박병선 박사에 의해 국내에 알려졌죠.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 중이던 박 박사는 서고에 보관 중이던 『직지』 하권을 찾아 연구했고, 1972년 개최된 유네스코 주관 책 전시회에서 『직지』 하권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서적으로 공식 인정받는 데 큰 공을 세웠죠.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는 『직지』에 대한 내용 외에도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금속활자 인쇄 문화에 대한 여러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직지』 하권은 2001년 9월 4일 세계적인 수준의 중요성을 지닌 기록유산의 보존을 장려하기 위해 선정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어요.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기 때문에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은 것이죠.


시온 학생기자가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는 하권만 남아있지만, 박물관 로비에 있는 78개의 『직지』 금속활자판은 상·하권이 다 포함된 3만여 자였어요. 어떻게 복원하신 건가요?"라고 물었어요. "『직지』는 금속활자로 간행된 1년 뒤인 1378년 여주 취암사에서 목판본으로 한 번 더 간행됐어요. 『직지』 상권의 내용은 이 목판본을 통해 알아낸 것이죠."(장)
김민영 학생기자가 청주고인쇄박물관 로비에 있는 『직지』 상·하권 금속활자판을 살폈다. 국가무형문화재 임인호 활자장이 청주고인쇄박물관과 함께 복원한 것이다.

금속활자로 온전히 복원된 『직지』

78개의 판에 담긴 3만여 자의 금속활자를 청주고인쇄박물관과 함께 복원한 주인공, 바로 임인호 활자장입니다. 청주고인쇄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청주시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는 매주 금·토요일에 임 활자장의 금속활자 주조과정 시연을 관람할 수 있죠. 도훈·민영·시온 학생기자가 시연 관람에 앞서 임 활자장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는 1996년에 금속활자의 대가 고(故) 오국진 선생을 만나 스승님으로 모시면서 금속활자 제작에 입문했죠."(임)

임 활자장은 2011년부터 5년 동안 『직지』 금속활자 복원에 매진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청주고인쇄박물관 로비에서 본 금속활자판이 바로 그가 복원한 작품이죠. 고려의 우수한 인쇄기술을 증명하는 『직지』의 상·하권을 만들어낸 금속활자가 임 활자장의 손을 거쳐 현대에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어요.
임인호 활자장이 청주시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주물사주조법으로 금속활자를 만드는 법을 시연했다.
"딱히 꼬집어서 무엇이 힘들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체적으로 힘든 작업이었어요. 매일 저녁에는 글씨를 새기고, 다음날은 쇳물을 부어 활자를 주조하는 과정을 반복했죠. 그러다 보니 5년 동안 잠을 잊어버렸어요. 그 후유증으로 심혈관질환·골다공증을 앓아 건강을 많이 잃었죠. 복원 프로젝트가 끝난 다음 날에는 하체 마비가 왔습니다. 치료를 받은 뒤 일주일 뒤에야 걸을 수 있었죠. 하지만 『직지』 상·하권 금속활자를 완벽하게 복원한 결과물을 보면 '내가 저걸 만들었나' 싶고 성취감이 들어요."(임)


전통적인 금속활자 제작 방법은 주물사로 불리는 모래·점토를 활용한 주물사주조법, 벌집의 찌거기를 가열·정제한 밀랍을 활용한 밀랍주조법 등이 알려져 있어요. 고려시대에 많이 사용되었고, 『직지』를 찍어낸 금속활자를 주조한 방법으로 알려진 것은 밀랍주조법입니다. 『직지』 하권에 인쇄된 활자들이 밀랍주조법으로 만들었을 때 나타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임 활자장이 복원한 금속활자 역시 『직지』 밀랍주조법으로 만들었어요. 청주고인쇄박물관 전시실에는 밀랍주조법으로 금속 활자를 만드는 과정이 모형과 영상 등으로 자세히 설명돼 있죠.

김도훈 학생기자가 나무판을 조각한 목판, 나무로 개별 활자를 만든 목활자, 금속으로 만든 금속활자 등을 만져보며 차이를 확인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청주시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 시연하는 주물사주조법을 참관했어요. 밀랍주조법에 비해 소요되는 시간이 짧아 한정된 시간 안에 금속활자가 제작되는 과정을 보여주기에 적합하죠. 주물사란 활자의 모양을 만드는 주형틀 안에 넣는 점토가 섞인 모래를 말해요. 조선시대 문신 성현의 수필집인 『용재총화』에도 기록된 방법이죠.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무판에 글자를 양각으로 새긴 뒤, 이를 주물사로 채운 두 개의 주형틀 가운데 넣으면 주물사로 된 표면에 해당 글자의 모양이 새겨집니다. 이후 글자를 새긴 나무판을 제거하고 쇳물이 들어갈 통로를 주형틀 입구에 만들어요. 그리고 주형틀 안에 쇳물을 흘려보낸 뒤 굳히면 금속활자가 탄생하죠. 주물사는 단순한 모래가 아니라, 소량의 점토질 성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물을 적당히 뿌려주면 응집력이 생겨요. 그래서 글자가 새겨진 나무판을 빼내도 그 형태를 유지하는 겁니다.

1200도가 넘는 쇳물을 눈앞에서 보니 금속활자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기술이 필요했을지가 눈에 그려졌어요. 이렇게 높은 온도를 견디면서 탄생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금속활자가 내구성이 좋은 것이죠. 구슬땀을 닦던 임 활자장이 "우리 앞에 다가올 미래의 발전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에 발전한 과학기술의 원리를 아는 것도 중요해요"라고 말했죠.

『직지』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금속활자 기술은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책을 통한 빠른 지식 전달이 가능해지면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지방에서도 인쇄 활동이 활발했죠. 지방의 관청은 물론 사찰·서원·향교·문중·개인에 이르기까지 간행 주체도 다양했어요. 그만큼 간행된 책의 종류도 지식을 담은 교과서에 해당하는 책부터 개인 문집·족보까지 광범위했죠.
금속활자는 낱개의 금속활자를 자유자재로 조판할 수 있기 때문에 페이지 전체를 조각해야 하는 목판 인쇄에 비해 새로운 서적 제작 속도가 빠르다.
특히 조선 후기 한글 보급이 확대되면서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의학지식을 담은 의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지리를 기록한 지리서, 어휘를 모은 사전, 사회 풍자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주는 소설류의 책들도 간행·판매됐어요. 북송의 사마광이 기원전 403년부터 기원후 960년까지 1362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인 『자치통감』, 1299년 중국 원나라 주세걸이 편찬한 수학책으로 도량형·원주율·분수·제곱근 등 여러 수학 지식이 수록된 『신편산학계몽』, 조성하가 1865년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기행시문 등을 모아 엮은 책으로 금강산 일대의 산수명의 유래, 사찰과 명승의 경계와 특징 및 위치 등을 상세히 수록한 『금강산기』 등을 보면 인쇄술의 발전이 곧 민중에게 여러 분야의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그렇다고 해서 책 인쇄에 금속활자만 사용된 건 아닙니다. 고려·조선에서 금속활자는 나무판에 인쇄해야 하는 내용을 양각으로 새긴 목판인쇄와 함께 사용됐어요. 목판 제작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었지만 인쇄하고자 하는 내용에 해당하는 글자를 판에 하나씩 조립해야 하는 금속활자에 비해 대량 인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즉, 목판인쇄는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수요가 있는 책의 경우 유리한 방법이죠. 반면 금속활자는 여러 종류의 책을 소량으로 인쇄하는 상황에서 유용했죠. 금속활자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책들은 목판인쇄를 통해 대량 간행되곤 했어요.
1883년 설치된 박문국에서 간행한 '한성순보'의 초간본(오른쪽)과 그 인출에 사용된 납활자로 짠 판. 근대 인쇄술의 도입은 전통 금속활자 인쇄가 쇠퇴하는 원인이 됐다.
조선 후기까지 인쇄의 중심축이었던 전통 금속활자 인쇄술의 전성기는 1800년대 말 근대 인쇄술의 도입과 함께 서서히 막을 내립니다. 1883년에는 정부가 신문 발행과 출판 업무를 맡아보는 관청인 박문국을 설치하고 인쇄기계와 납활자를 수입해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가 납활자로 판을 짜서 간행됐어요. 이후 민간에서도 광인사 등 근대 인쇄술을 사용하는 인쇄소가 생겨났죠. 납활자도 조판 과정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전통 금속활자 인쇄와 같지만, 사람이 아닌 기계가 인쇄하므로 속도가 훨씬 빨랐죠. 이렇게 납활자를 이용한 근대식 인쇄술은 1990년대 컴퓨터를 활용한 제작 방식이 도입되면서 사라졌어요.

지금 우리는 컴퓨터·스마트폰 등으로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죠. 이렇게 손쉽게 지식을 공유하기까지는 목판 인쇄가 금속활자 인쇄로 발전했듯, 여러 과정이 있었답니다. 즉, 고려시대 금속활자의 등장은 지식의 전파 속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현대 인터넷의 등장과 비견할 만한 일이었던 것이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직지』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도훈·박민영·이시온(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와 금속활자에 대해 알아봤다.
밀납주조법
흥덕사에서 『직지』를 간행할 때 사용한 금속활자 주조법으로 추정되는 밀랍주조법은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쳐요.
 ⓒ 청주고인쇄박물관
1. 글자본 붙이기: 인쇄하고자 하는 글자를 종이에 적은 글자본을 밀랍대에 뒤집어 붙인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2. 밀랍자 만들기: 뒤집어 붙인 글자본을 따라 글자를 양각으로 새긴 후 한 자씩 잘라내 밀랍으로 만든 봉에 붙인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3. 밀랍가지 만들기: 활자를 대량으로 주조하기 위해 100~150개 정도의 밀랍봉을 굵은 밀랍봉에 하나씩 붙여 나무 모양을 만든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4. 주형틀 만들기: 밀랍가지를 세운 뒤 굵은 대나무로 된 거푸집을 씌우고 황토·모래·이암(석비레) 등을 섞어 반죽한 주형토를 채워 그늘에서 15~20일 정도 건조한 뒤 가마 안에 넣어 밀랍을 녹인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5. 쇳물 붓기: 밀랍이 사라진 빈자리에 약 1200도로 녹인 쇳물을 붓고 식힌 뒤 주형토를 제거하면 3에서 만들었던 밀랍가지 형태의 금속 덩어리, 활자가지가 나온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6. 활자 다듬기: 활자가지에서 낱개 활자를 일정한 크기로 자른 뒤, 활자면을 곱게 다듬어 금속활자를 완성한다.
주물사제조법
조선시대 관청에서 주로 사용한 금속활자 제작기법인 주물사주조법에 대해 알아봅시다.
1. 어미자와 거푸집 만들기: 나무에 양각으로 글씨를 새긴 어미자를 양각면이 하늘을 향하도록 거푸집 아래 틀 바닥에 놓고, 주물사를 체로 쳐서 눌러 채운다. 수평이 맞도록 자로 주물사 면을 정리한 뒤 거푸집 아래 틀을 뒤집어 거푸집에 쇳물이 들어가는 입구인 탕도 부분도 주물사를 채운다.

2. 거푸집 위·아래 결합: 거푸집 위·아래를 맞추고, 테두리에 부착된 상하 연결쇠로 단단히 고정한다. 거푸집 위도 주물사를 체로 쳐서 채우고 다진 뒤 자로 수평을 맞춘다.

3. 탕도 만들기: 거푸집 위·아래 틀을 분리하고, 조각도로 탕도의 일부를 파내 쇳물이 흘러 들어갈 통로를 만들어 탕도에서 각 어미자까지 쇳물이 흘러갈 수 있게 한다.

4. 어미자 제거하기: 송곳으로 조심스럽게 어미자 뒷면을 찍어서 수직으로 들어낸다. 그러면 거푸집 안 주물사에는 양각으로 조각된 어미자의 형태만 남는다.

5. 쇳물 붓기: 아래·위 거푸집을 합치고 연결고리를 채워 고정한 뒤 약 1200도 정도의 쇳물을 붓는다.

6. 활자 다듬기: 약 20분 정도 기다린 뒤 거푸집 위·아래를 분리하면 활자 모양의 잎이 달린 나무 형태의 쇳덩어리인 가지쇠를 확인할 수 있다. 가지쇠를 솔로 문질러 활자 형태가 잘 나왔는지 확인한 뒤 활자를 하나씩 떼어내 표면을 다듬어 금속활자를 완성한다.

『직지』와 『의궤』를 세상에 알린 박병선 박사
ⓒ 청주고인쇄박물관
1923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故) 박병선 박사는 1955년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로 유학해 소르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했어요. 동양서고에서 잊혔던 『직지』를 찾아내 연구, 1972년 개최된 유네스코 주관 책 전시회에서 『직지』 하권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서적으로 공식 인정받는 데 큰 공을 세웠죠. 또한 박 박사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극동함대가 약탈해 간 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 중이던 또 다른 우리의 기록유산인 강화도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찾아내 목록과 내용을 정리하여 2011년 『의궤』가 국내에 반환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박 박사는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죠. 평생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박 박사는 의궤가 반환된 해인 2011년 11월 22일에 세상을 떠나 국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이번 취재에 큰 기대를 가지고 참여했어요. 장원연 학예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직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됐죠. 『직지』를 직접 보면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 프랑스에 보관되어 있어요. 『직지』와 금속활자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직지』를 국내에 알린 박병선 박사님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또 임인호 활자장님이 금속활자를 만드는 모습도 신기하고 인상 깊었죠. 나무에 글자본을 붙이고 글자대로 새긴 후 주물사로 거푸집을 만들어 덮고 쇳물을 붓습니다. 그런 뒤 거푸집에서 꺼낸 활자를 다듬으면 완성이죠. 프랑스에 있는 금속활자본 『직지』가 우리나라에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도훈(충북 청주솔밭초 5) 학생기자

이번 취재처는 청주시금속활자전수교육관과 청주고인쇄박물관이었어요. 금속활자전수교육관에서 임인호 금속활자장님이 직접 금속활자를 만드는 과정을 봤죠. 금속활자를 만드는 방법 중 주물사주조법은 점토가 섞인 모래로 거푸집을 만드는 것입니다. 금속활자로 만든 『직지』는 현재 하권만 전하며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슬펐던 점은 그 가치를 생각하면 몇십억원도 부족했을 『직지』가 프랑스 경매에서 헐값에 팔렸다는 것입니다. 『직지』를 다시 우리나라로 꼭 가져왔으면 해요. 이번 취재를 통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소중 독자 여러분들도 『직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널리 알리려고 노력해 보면 어떨까요.

김민영(충북 청주대성초 6) 학생기자

이번 취재를 통해 우리 인쇄 기술에 대해서 많은 것은 알게 되었어요. 금속활자를 눈앞에서 만드는 걸 보니 정말 신기하면서도 조상님들이 이 기술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지도 생각하게 됐죠. 또한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과거에 간행된 여러 서적과 금속활자를 보며 『직지』와 금속활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혼자라면 어려울 수도 있었을 내용을 장원연 학예사님과 임인호 활자장님이 잘 설명해 주셔서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집에서 청주까지 1시간 40분 걸려서 갔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던 것 같아요.

이시온(경기도 홈스쿨링 5) 학생기자




성선해(sung.sun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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