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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마음이 가는 길

이기희

이기희

마음에도 길이 있다. 가고 싶은 길, 안 가고 싶은 길. 유년의 감꽃이 흐드러진 골목길, 생각나면 눈물 고이는 아득한 추억의 길, 잊어버리고 싶은, 되돌아보고 싶지 않는 캄캄한 길,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길, 영원히 지우고 싶은, 기억 속의 슬픈 길, 막혀버린 담장 끝에서 죽음처럼 어둔 골짜기를 헤매던 길.  
 
강물은 흔적 없이 흘러가지만 마음의 길은 돌뿌리로 남아 상처를 덧나게 한다.  
 
사랑이 스쳐간 곳도 흔적이 남는다. 새벽이면 영롱한 이슬 머금고 반짝이지만 무지개 빛 햇살과 한나절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기울면 사랑은 낙엽 되어 뒹군다. 영원을 다짐하던 사랑도 책갈피 속 마른 꽃잎의 흔적으로 남는다.
 
암수의 눈이 하나씩이라 짝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비익조(比翼鳥), ‘두 그루면서 한 나무로 얽힌’ 연리지(連理枝)의 사랑도 양귀비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사랑도 우정도 믿음도 의리와 목숨까지도 영원한 것은 없다.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의 고통이 제일 아프다. 우정에 금이 가고 신뢰가 허물어지면 공들여 쌓아 올린 믿음의 성벽이 무너진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마음에 긁힌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다. 딱지를 떼고 지우고 잊으려 해도 상처 난 마음의 흔적은 수시로 덧난다.  
 
살다 보면 별이 일이 다 생긴다. 믿었던 사람이 양다리 걸치고 다정했던 동료가 등 돌리고 배신 때리는 일이 생긴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지 변한다. 어제의 인연에 연연해서 오늘과 내일을 멍들게 하는 선택은 바보짓이다. 상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어둔 길로 잘못 들었으면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말 바꾸기와 권모술수로 이득을 취하고, 평온한 일상에 재를 뿌리며, 타인의 인생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사람과는 잡은 손은 놓는 것이 지혜롭다. 세상에는 겸손하며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봄 봄이다! 이세상 모든 슬픔과 아픔, 묵은 상처의 흔적들을 지우는 찬란한 계절이다. 뒷마당을 병풍처럼 둘러싼 나무들이 연녹색 잎새들을 가지에 피울 때마다 새들은 새벽부터 합창을 한다. 눈보라 치는 겨울동안 어디서 둥지를 틀고 살았을까. 때지어 동그라미나 포물선을 그리며 혹은 담장에 한 줄로 앉아 합창을 한다. 같은 크기 같은 색깔 비슷한 모양의 새들이 나란히 앉아 재잘거린다.
 
미국 속담 ‘날개가 같은 새들이 함께 모인다(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는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모인다는 뜻이다.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 나는 도토리 (중략)/ 내가 더 크고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중략) / 크고 윤 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박노해의 ‘도토리 두 알’중에서
 
믿음과 우정, 참과 거짓의 굴레에서 흐트러진 마음 가다듬고 숲 속 길을 걷는다.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시인은 참나무가 되기 위해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 숲으로 힘껏 던진다.  
 
갈림길에선 선택이 필요하다. 가질 것인가 버릴 것인가. 지킬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사람이던 물건이건, 사랑이던 우정이건, 덧난 상처를 추스리며 걸어가는 마음의 길은 보잘 것 없는 도토리의 길이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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