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릉을 오르다 ‘사량’에 빠지다
진우석의 Wild Korea ⑫ 경남 통영 사량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부럽지 않은 섬
통영시에 속한 사량도는 통영과 남해군, 고성군 사이에 자리한다. 통영에서 14㎞, 사천시 삼천포에서 16㎞, 고성군에서 5㎞ 거리다. 사량도를 널리 알린 건 사천의 산악인이다. 1979년쯤 삼천포산악회가 사량도의 지리산(397.8m)과 옥녀봉(281m) 등을 개척했다. 당시 바위에는 석란과 풍란이 지천으로 널렸고, 멧돼지가 득실거렸다고 한다. 해초를 뒤집어쓰고 건너오는 멧돼지를 마을 어부가 많이 잡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멧돼지가 없다.
사량도는 윗섬과 아랫섬이 마주 보고, 그 사이에 호수처럼 잔잔한 동강(桐江)이 흐른다. 진짜 강은 아니다. 바닷물이 오동나무처럼 푸르고 강처럼 흐른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량도 윗섬에는 지리산·달바위·옥녀봉 등이 성채를 이루고, 아랫섬에는 칠현산(344m)이 일곱 봉우리를 펼친다. 사량도 주변으로 대섬(죽도)·나비섬(잠도)·수우도가 흩어져 있다.
통영 가오치항을 떠난 카페리가 40분쯤 달려 윗섬 금평항에 닿았다. 승객 대부분이 윗섬에서 내린다. 아랫섬은 낚시꾼이 간다. 산행은 버스를 타고 섬 반대편 수우도 조망 전망대에서 시작해 능선을 종주하고 금평항으로 돌아오는 게 정석이다. 사량도에 딸린 수우도는 고래바위·해골바위 등 비경이 알려지면서 최근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암벽에 뿌리 내려 더 붉은 ‘진달래’
사거리에서 15분쯤 오르면 하늘과 맞닿은 듯한 긴 계단을 만난다. 계단 앞 이정표는 우회로를 알리고 있다. 여기가 달바위로 가는 칼날 능선이다. 힘들어도 피하지 말고 꼭 걸어보는 걸 추천한다. 예전에는 안전시설이 없어 위험했지만, 지금은 튼튼한 철제 난간이 설치돼 있다.
달바위(400m)의 고도감은 1000m가 넘는다. 동서남북으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앞으로 가야 할 봉우리들이 한눈에 잡히는데, 산세가 역동적이다.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날아가는 듯하다. 풍경은 멋지지만, 산행 난도가 높다.
설악산급 달바위와 슬픈전설 옥녀봉
가마봉(303m)은 지리산 능선의 중간쯤이다. 걸어온 지리산과 가야 할 옥녀봉이 한눈에 잡힌다. 가마봉에서 내려오는 계단의 경사가 거의 90도처럼 느껴진다. 이런 급경사 계단은 처음 본다. 조심조심 내려오면 연지봉 구름다리가 기다린다. 낙타 등처럼 생긴 봉우리 3개에 다리 2개가 걸려 있다. 다리 하나를 건너면 ‘짠’ 하고 다른 다리가 나타난다.
옥녀봉을 내려오면 능선은 슬금슬금 고도를 낮추고, 금평항에 닿으면서 산행이 마무리된다. 횟집에서 자연산 우럭을 잡아 만들어준 회덮밥을 맛있게 먹었다. 항구에서 배가 기적 소리를 울린다. 허벅지가 마치 육지의 지리산 종주를 마친 것처럼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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