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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말하기의 단계

말을 잘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현대사회는 아무래도 글의 시대라기보다는 말의 시대로 보입니다. 정교하고 수려한 글보다는 하루하루 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말하기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말하기라는 점입니다. 말을 잘하는 중요한 방법은 놀랍게도 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특히 듣는 사람이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거나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때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말하기의 첫 단계입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답답해합니다.  
 
말하기 전에 듣는 사람을 살피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듣는 이가 내 이야기를 알아들을 만큼 성장하였는지도 알아봐야 하지만, 듣는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합니다. 도대체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가 하는 말은 그저 소음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런 말을 ‘소리’라고 합니다. 말을 소리라고 표현하는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큰소리, 잔소리, 흰소리, 헛소리는 모두 의사소통에 실패한 말입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우리는 일방향의 소리만 들려주고 있는 겁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도 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말하기입니다. 시간이 없는 이를 붙잡고 하는 말하기나 다른 관심사가 있는 사람에게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듣는 이의 수준이나 관심을 살피는 노력이 필요한 겁니다. 저는 가르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유학의 글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도 가르치는 방법이라는 내용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쉽게 가르칠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안 가르치는 것도 방법이라니요. 저는 안 가르치는 방법도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말하기입니다.  
 
말하기는 일정한 것이 아닙니다. 즉, 상대에 따라서 말하기는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 다르고, 윗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릅니다. 많이 아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르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다릅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잘 설명하는 말하기가 좋은 말하기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근기에 따른 설법을 이야기합니다. 상대의 정도에 따라 설명이 달라져야 하는 겁니다. 깨달음의 단계가 높은 사람과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똑같은 청자일 수는 없습니다. 상대를 보고, 달리 이야기하려는 태도야말로 늘 조심해야 하는 말하기의 단계입니다.
 


옛글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말하기는 진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은 가장 피해야 하는 말하기입니다. 교언영색은 그저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말하기와 표정을 말합니다. 말하기의 경계 1순위입니다.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말하기는 남만 속이는 게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나를 속이는 말하기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솔직한 말하기는 쉬운 게 아닙니다. 솔직한 표현이 상처가 되는 일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이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태도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비뚤어져 있으면서 말이 바로 나가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듣는 이의 상태도 잘 살펴야 합니다. 나의 곧은 말이 그에게는 깊은 상처를 줍니다.  
 
말하기의 마지막 단계는 저는 화엄경의 보현행원품 칭찬여래원에서 말하는 변재천녀(辯才天女)의 말하기라고 봅니다. 칭찬여래원은 여래 즉, 부처님을 칭찬하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을 칭찬하는 것이니 얼마나 정성껏 좋은 말로 하여야 할까요? 이때 변재천녀는 부처님을 칭찬하는 역할로 나옵니다. 그야말로 온갖 아름다운 말로 부처님을 칭찬합니다. 부처님에 대한 찬탄은 변재천녀로도 모자랄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부처님만 부처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뭇 중생이 불성을 가진 부처라는 생각은 칭찬에 고민을 더하게 됩니다. 저런 사람까지 칭찬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겁니다. 그 순간이 깨달음의 ‘찰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은 상대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말하기가 좋은 말하기입니다. 칭찬이 그대로 수행이듯이, 말하기도 그대로 깨달음이 됩니다. 말하기는 배려이고, 소통이고, 사는 기쁨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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