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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미생’은 살아있고 ‘완생’은 잊혀진다

미생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만화 ‘미생’의 마지막 책을 손에 쥐자 깊은 감회가 밀려옵니다. 책 표지에는 ‘未生’이란 큰 글씨와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작은 글씨가 보입니다. 그 아래 21권째를 의미하는 21이라는 숫자, 그리고 윤태호라는 작가 이름이 있군요.

윤태호씨는 바둑의 고수는 아닙니다만 바둑용어인 ‘미생’이란 두 글자를 붙들고 12년을 씨름했습니다. 웹툰으로 시작한 ‘미생’은 TV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지요. 늙어가는 바둑의 인기를 지탱하는데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바둑기자에겐 좋은 뉴스였지요.

그런 ‘미생’에 대해 이제야 처음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만화에 제 이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미생’은 매 장을 시작하기 전에 바둑이 한 수씩 나오는데요, 시즌1에서는 조훈현 9단 대 녜웨이핑 9단이 대결했던 제1기 응씨배 결승 최종국, 시즌2에서는 1999년 이창호 9단 대 마샤오춘 9단의 삼성화재배 결승 최종국이 나옵니다.

처음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는 중앙일보 기자시절이었는데, 무척 기뻤습니다. 바둑을 한 페이지에 단 한 수씩 해설한다는 게 매력적이었습니다. 꼭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요.



첫 원고는 아직 대국이 시작되기 전인 빈 바둑판을 놓고 썼습니다.

“텅 빈 바둑판은 요염하게 빛나고 그 위로 폭풍전야의 정적이 흐른다. 외나무다리에 선 승부사들은 묻곤 했다. 그곳 망망대해의 어디에 나의 삶이 존재하는가. 이제 나는 칼을 품고 대해로 나가려 한다. 나는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는가. 두 적수는 무심한 눈빛으로 판을 응시한다.”

지금 다시 보니 무협소설 비슷하네요. 하지만 1989년 당시의 대국장의 분위기는 그 이상 비장했습니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어려서 바둑에 빠지고 프로기사를 목표로 11세에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었으나 입단에 실패합니다. 장그래는 바둑을 포기하고 낯선 세상으로 나갑니다. 만화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바둑돌을 떨구는 그 순간 세상은 허물을 벗었다. 나에게만 감춰졌던 세상이 갑자기 나타났다.”

인턴으로 회사에 들어간 장그래는 동료, 상사들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나 바둑에서 몸에 밴 신중, 통찰, 인내 등이 암중으로 작용하여 조금씩 사회인 장그래를 키워냅니다. 그러나 장그래는 여전히 미생입니다. 아니 동료 상사는 물론 세상 모두가 미생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태호씨는 IMF 때 그러니까 국가도 망할 수 있고 은행이 사라지고 평생직장이란 개념도 사라지던 1998년 무렵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밝힙니다. TV에선 꿈대로 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꿈대로 못사는 이들은 위로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둑은 다르다고 윤태호씨는 생각했습니다.

특히 승자와 패자가 마주 앉아 나누는 복기에 그의 시선이 꽂힙니다. 빠르면 6, 7세 때부터 복기를 하며 고통과 괴로움을 삭이며 패배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와 한 수 한 수 걸음을 옮기는 얘기가 바로 ‘미생’이라고 작가는 밝힙니다. 구상 10여년, 작업 12년. 작가는 말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끊임없이 패배감을 맛보면서도 결국 우리는 살고 있다.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복기를 통해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바둑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미생’ 얘기에 ‘완생’을 빼놓을 수 없군요. 윤태호 작가와 유창혁 9단 두 사람은 책 말미의 대담에서 이렇게 공감합니다. “완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 자체가 미완성이라서 계속 완생을 꿈꾸며 갈 뿐이다.”

여기에 조금 덧붙여 봅니다. 바둑판 위에서 미생의 돌은 끊임없이 관심을 모으고 승패의 핵심이 됩니다. 그러나 완생의 돌은 어떻습니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미생은 싱싱하게 살아있고 완생은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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