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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잔가지 치며 울지 않기

이기희

이기희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이/ 햇살에 맑게 빛날 때다 (중략) /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을 때다’-정호승의 ‘거미줄’ 중에서
 
정호승은 또 다른 시 ‘거미’에서 거미줄에 매달려 평생 흘린 자신의 눈물을 본다.  
 
왕거미 한 마리가 눈물을 갉아먹으려고 하다가 아침 햇살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햇살에 반짝이는 눈물은 희망이고 사랑이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거미줄에 걸려 빠져 나올 수 없는 미궁일지 모른다. 잡사에 몰두해 중요한 일은 놓치며 살다가 오동나무에 걸린다. 유혹에 눈이 어두워 사랑의 향기 맡지 못하고, 이별의 눈물 홀로 삼키지 못해 그대 발목을 잡는다. 너무 많이 가지려다 모든 걸 잃고, 오늘을 견디지 못해 내일의 희망에 자물쇠를 채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허우적거리고, 없는 것을 마른 땅에 묻는다.  
 


나무들도 밤이면 운다. 새벽 이슬은 밤새 빛나던 별들이 흘린 눈물이다.
 
바람이 불면 나무는 잔가지를 흔들며 외로운 손짓을 보낸다. 지난 겨울은 껴안고 있기조차 힘들었다고, 가장 연약한 가지 하나 꺾어 날려 보낸다.  
 
영원히 붙어 함께 사는 것은 없다. 사랑도 욕망도 재물도 후회도 절망까지도 어느날 홀연히 떠나간다.  
 
춘분(春分)이 지난 탓인지 봄을 재촉하는 비가 자주 내린다. 춘분점은 테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  
 
봄 햇살은 따스한데 바람이 많이 분다. ‘2월(음력)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는 속담처럼 꽃샘바람이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일년 24절기를 꿰고 있는 어머니는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신다. 청명에 심으면 무엇이던 잘 자란다는 뜻이다. 청명은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데 이때쯤이면 어머니는 삼만이 아재와 본격적으로 농사준비에 들어간다.  
 
봄이 오면 어머니는 굽은 등을 더 굽혀 가지를 친다. 앞뜰을 가득 채운 찔레꽃 가지를 정성 들여 자른다. 전지(剪枝)는 나무가 원하는 형태로 자랄 수 있도록 가지를 잘라주고 웃자람을 막고 겉모양을 고르게 하는 일이다. 가지를 잘라내는 아픔이야 없겠냐만은 더 아름답고 튼실하게 자라기 위해 아파도 울지 않는다.  
 
잔 가지를 치면 나무 둥치가 보인다. 뿌리가 튼튼해지고 꽃과 열매가 풍성해진다.  
 
살다 보면 가지를 칠 때가 생긴다. 너무 오래 방치하면 겉과 속이 뒤죽박죽 된다. 군더더기를 없애면 핵심이 보인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면 정작 필요한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가식을 땅에 묻으면 참모습의 꽃을 피운다.  
 
곁가지 잔가지 치고 홀로 눈물 떨구지 않기를, 거미줄에 걸려 퍼득 거리는 것이 사랑이라 해도, 이별 뒤에 오는 빈 잔의 추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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