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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세상이 그려놓은 선

학교를 다녀와서 다시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되던 시절, 방과 후 골목길은 여름 한날의 더위도 식혀주던 놀이터였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오징어를 하자, 아니 사방 치기를 하자고 엄지를 추켜세우며, 여기 붙으라고 소리치는 합창 소리가 쟁쟁했습니다.
 
조금 밥그릇 수를 더 쌓았다고 고학년들은 무기를 챙겨서 나옵니다. 구슬과 딱지로 무장하고는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나름 살벌한(?) 각오를 다지며 골목길에 등장합니다. 삼각형을 그리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주머니에서 구슬들을 꺼내 놓습니다. 딴에는 오케이 목장의 결투보다 진지합니다. 엄지 구슬로 선후를 정하면 비장한 삼각형이 시작됩니다. 쪼아 찍기, 깔 패기, 날라 찍기. 이름도 화려한 초식들이 등장하고 탄식과 한숨 그리고 웃음소리가 골목을 점령해 갑니다.
 
오늘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눈에 힘을 주며 구슬을 노려보지만, 상대방은 염소가 날름날름 종이를 집어먹듯이 구슬을 따갑니다. 그때마다 소년의 눈빛은 점점 내려앉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그때 갑자기 큰 환호와 탄식소리가 터졌습니다. 잘나가던 상대의 엄지 구슬이 삼각형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이제껏 먹은 모든 구슬을 토해내야 하니 그 억울함과 통쾌함에 골목이 떠들썩해집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인생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려놓은 삼각형 밖으로 밀려나면 구슬은 죽습니다. 땅에 그린 선이 무슨 힘이라도 있는지, 사방 치기도 오재미도 그렇습니다. 선을 밟아도 죽고, 선 밖으로 나가도 죽습니다.
 
세상이 그려놓은 선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뒤처지는 것이고, 좌절이며 인생의 실패라고 부릅니다. 여전히 땅 위에 있지만, 구슬은 더는 놀이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지만, 내일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죽어버린 구슬들은 그렇게 내일을 잃었습니다. 그때 엄지 구슬이 삼각형 안으로 선을 넘어들어왔습니다. 엄지 구슬은 죽었고 다른 구슬들은 모두 살아났습니다.
 
우리들의 소원이 그랬나 봅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아이들의 삼각형에도, 오징어 놀이에도, 술래잡기도 다방구에도 살펴보면 회생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집을 떠난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향해 돌아서듯 다시 사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일도, 착한 일도 나를 지으신 이가 없다면 어찌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모두 받았지만 자기가 한 듯이 자기 것처럼 살아가니 이것이 바로 자신을 높이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선 밖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죽기 위해 선 안으로 들어온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나는 그래도 더 예쁜 구슬이어서 살았다고 스스로 속지 않도록, 하나님 자신이 선을 넘어와 죽으셨습니다. 남보다 나은 깨달음도, 앞서는 능력을 가진 나도 아닌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살리는 믿음입니다.
 
sunghan08@gmail.com

한성윤 / 목사ㆍ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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