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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우리 이제 ‘심안’으로 만나자

이정아 수필가

이정아 수필가

그녀와 나는 오래전 교회에서 만났다. 아니 그보다 전 한국에서 먼저 만났다. 나를 보고 국어 선생님이셨죠? 하는 걸 보면 공부엔 별 관심 없었던 듯하다. 나는 가정과목을 가르쳤고 내 기억에도 그녀가 뚜렷이 남아있지 않으니 서로 그렇고 그런 학생과 선생 사이였나 보다.
 
그래도 이역만리에 이민 와서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그 인연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불가에서는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7000겁, 부모와 자식은 8000겁, 형제자매는 9000겁, 그리고 스승과 제자는 무려 1만 겁의 인연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모나 형제자매의 인연보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몸은 부모로부터 받지만, 진정한 깨우침은 참된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에서 비롯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감히 ‘스승과 제자’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스승이란 호칭은 제자가 인정해야만 하는, 을이 인정해야 하는 갑의 호칭이어서 함부로 쓰긴 조심스러운 관계이다. 오히려 나는 내가 가르친 학생인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여고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에 와서 결혼한 그녀는 나보다 빨리 자녀를 두었다. 우리 아이가 중학생일 때 그녀의 아들은 고교졸업반으로 하버드에 입학해 온 교인의 축하를 받았다. 내 일처럼 기쁘고 대견했다. 미국에서의 자녀교육 선험자여서 유익한 여러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교회의 분란으로 서로 교회가 달라져서 한동안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
 
얼마 전 동료 문인과 이야기하던 중에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그녀가 암 수술의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다는 가슴이 덜컥하는 소식이었다. 팬데믹 기간 중의 일이었다고 한다. 나 살기 급급해 잊고 산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지만 차마 연락을 못 했다. 무슨 위로를 해야 할까 생각나지 않고 남의 고통에 섣부른 참견을 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며칠 뒤 그녀가 먼저 전화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시간이 필요했다며 늦게 소식을 알려 미안하단다. 담담히 그간의 일을 말하는데 위로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이젠 현실을 수용했다고 한다. 남편이 조기 은퇴하여 극진히 보살펴주어 불편이 없다고도 했다.
 
“선생님과 타호에 함께 가서 종일 찬양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평생 그렇게 많은 찬양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오래전 남편의 가스펠 밴드에서 레이크 타호로 수련회 갈 때 초대했었는데 그때를 말하나 보다. 좋은 기억 속에 내가 남아있다니 다행스러웠다.
 
선생님을 한 번 봬야 하는데 미루다가 이렇게 되어서 죄송하다고도 했다. 한번 꼭 봬요. 남편이 데려다줘야 해서 시간을 맞춰보고 연락드릴게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이젠 큰 사람이 된 듯하다. 그녀가 스승이다. 우리 이제 육안보다 깊은 심안으로 만나자 J야!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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