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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배꽃

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비가 내린다. 꽃비가 내린다. 실바람이 불자 한 무리의 새처럼 화려하게 비상하는 꽃비들. 한동안 공중에서 화사하게 춤을 추던 꽃잎들은 소리 없이 흩어지며 갈색 땅 위에 고운 꽃수를 놓기 시작한다. 쌉쌀한 바람과 함께 우아하고 고운 춤사위를 펼치고 있는 꽃잎들은 새봄의 시작을 알리려고 온 계절의 정령이려나.
 
새 계절의 향연을 축하하듯 수줍게 피어난 하얀 배꽃이 꼭 이월의 여왕 같다. 온몸을 순백으로 치장하고 신성한 혼례를 치르는 신부의 모습이다. 하늘하늘한 곱디고운 면사포를 쓰고 그 위에 흰 왕관을 얹은 이월의 신부, 순결한 자태가 눈을 부시게 한다. 환한 봄볕 아래 은은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배꽃은, 다가오는 미래에 꽃길만을 약속받은 듯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자세히 보면 배의 꽃잎은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것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며 즐겁기도 한, 절절한 삶의 사연들을 꽃잎마다에 따로따로 새기려 그리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해 전해 줄 말이 많은 꽃잎들은, 한 송이에 통째로 새기기보다는 조곤조곤 나누어 삶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나무 위에서 피어나서 한 생, 땅에 떨어져서 한 생 그리고 열매를 맺어서 다시 또 한 번의 생을 이루는 배꽃은 이렇게 세 차례의 삶을 산다. 삶에 얼마나 깊은 애착을 품었길래 세 번의 생을 마주하며 이생에 머물기를 원했을까. 지독한 겨울을 힘들게 견뎌낸 까닭에 그리도 애착이 깊어진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삶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험하고 힘든 겨울이라는 대상이 꿋꿋이 버티고 있기에, 봄을 맞은 배꽃이 더 곱게 그리고 더 의미 깊게 피어 있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바람이 몰아치며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버팀목이었던 나무에서 무참하게 떨어지는 하얀 꽃잎들. 아름답고 황홀했던 찰나는 참혹하게 사라지고 영구할 것 같던 행복은 덧없이 추락했다. 원래 삶이란,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올라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순리 아니던가.  
 
떨어진 꽃잎들은 삶의 모든 것은 한결같을 수가 없어 모두가 변한다는 화두를 던지며, 세상의 모든 일이 덧없음을 의미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임을 말해주고 있다. 어찌 보면 가녀린 꽃잎들은 자신의 몸을 빌어 처절한 삶의 무상함을 설파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떨어지는 꽃잎들은,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잊을 때마다 바람결에 메시지를 보내며 찰나의 아름다움이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듯도 싶다. 다른 눈으로 살피면 눈부신 꽃잎들은 생명체의 무상함을 세상에 보여주며, 현재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 주려는 것도 같다.  
 
추운 겨울이 지나 신선하고 희망찬 계절의 시작인 배꽃이 피어나는 봄이다. 하지만 어설픈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내 영혼에는 아직도 봄이 찾아오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제나 내 가슴에도 따뜻하고 온화한 봄이 찾아오려나. 머지않은 미래에 내 혼에도 밝고 화창한 봄이 오기를,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린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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