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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그는 어디로 갔을까

노기제 통관사

노기제 통관사

춘삼월에 때아닌 폭우가 퍼붓다니. 남가주엔 겨울에 비가 오는데 말이다. 며칠 전, 밤에는 홍수가 날 거라고 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큰일이다. 공원 주차장 쓰레기통 옆에 텐트를 친 노숙자는 어딘가 비를 피해 갈 곳이라도 있는지 걱정이다.
 
내가 속한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은 매일 아침 LA한인타운 내 샤토 공원에 모여 운동을 한다. 차를 주차하고 공원 쪽으로 걸을라치면 커다란 상업용 쓰레기통 2개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에 모습을 숨긴 보호색의 텐트 하나.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쓰레기통과 같은 어두운 색깔의 텐트는 쓰레기통과 비슷한 키에 통통한 사이즈로 2인용이다.  
 
그 텐트의 주인과 가끔 얼굴이 마주칠 때면 가볍게 미소를 띠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다 보니, 가까운 이웃처럼 느껴진다. 몇 차례 현금도 건네고 한 번은 구운 맥반석 계란 대여섯 개를 신문 겹겹이 싸서 텐트에 넣어 주고 일어서는데 잠깐 기다리란다. 불편한 자세로 엉거주춤 서서 몇 초인가 기다렸다.
 
뭔가를 말없이 내민다. 나 주는 거냐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대로 눈으로만 스캔했더니 팔찌인 듯싶다. 환하게 웃어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난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시계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한다며 양손 손목을 털어 보여줬다. 히스패닉인지 영어가 서툴다. 그래도 알아듣는 듯 소통엔 별문제 없다. 그래도 주고 싶은 듯 몇 번을 더 권한다. 더 환하게 웃어주며 더 강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묘한 기분이 든다. 내 평생에 누구에게서도 받아 본 적 없는 장신구 선물이다.
 


내게 장신구란 고작 결혼반지가 전부다. 그마저도 안 낀다. 불편해서 싫다. 그런 탓에 남편에게서조차 못 받아 본 종류의 선물이다. 너무 확고하게 거부하는 반응에 이내 텐트 안으로 숨는다. 그리곤 나도 그곳을 떠나 집으로 향한다.
 
온정을 베푸는 자의 입장에선, 받을 상대가 남자다 여자다 혹은 젊었다 늙었다란 개념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적어도 난 그렇다. 오로지 부족한 사람이니 나누겠다는 생각일 뿐이다. 젊은 남자라 해서, 넌 나가면 노동이라도 해서 먹고 살 수는 있을 텐데, 허우대 멀쩡한 녀석이 구걸 질을 하느냐고 질타할 맘도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였다. 젊은 외국인 남자 노숙자로부터 장신구를 선물로 받게 되는 상황에 당황 했던 거다.  
 
그 후론 매일 아침 운동 가는 길이 불편해졌다. 어쩌다 또 얼굴 마주칠까 살피며 다닌다. 그러다 며칠 계속된 폭우로 마침내 그 텐트가 사라지고 없다. 걱정이 앞선다.
 
덩치 큰 쓰레기통 2개가 날마다 내 앞을 막아서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가 쫓아 버린 거 절대 아니거든. 비좁은 대로 우리 둘 옆에 텐트 칠 스페이스는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계속 경찰차가 왔어. 권총도 차고 기다란 방망이도 차고 있던걸. 폴리스 아저씨의 말투는 단호했어. 빨리 어디론가 가라고 다그치는 눈치였어. 노숙자들끼리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좋은 집이라고 그러던데. 그래서 이사 간 거야. 걱정하지 마. 어디로 잘 갔겠지.

노기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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