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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의 시작…'IAEA 안전조치' 이행과 북한

1990년대초 IAEA와 北 신경전, 1차 북핵위기 발발 30년 지난 현재도 北향해 "안전조치 이행" 촉구

북핵 위기의 시작…'IAEA 안전조치' 이행과 북한
1990년대초 IAEA와 北 신경전, 1차 북핵위기 발발
30년 지난 현재도 北향해 "안전조치 이행" 촉구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북한은 불법적인 핵 개발을 즉각 멈추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함상욱 주오스트리아 대사가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AEA 정기이사회에서 한 발언이다.
함 대사의 발언은 북한과 IAEA의 '오랜 인연'을 새삼 상기시킨다. 지난 30여년동안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존재해온 북핵 위기의 시작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74년 5월 IAEA에, 그리고 19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각각 가입했다. 북한이 1980년대 말까지는 핵 관련 국제사회의 비확산 규범을 준수한 셈이다.


하지만 북한은 NPT 조약의 관련 조항에 따라 NPT 가입 후 180일 이내에 이행해야 할 IAEA와의 안전조치(safeguards)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이 협정은 회원국의 '불이행(non-compliance)'이 발생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경제·외교·군사적 제재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안전조치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수반되는 핵물질, 장비, 시설 등이 핵무기나 기타 핵폭발장치의 제조에 전용되지 못하도록 검증하는 일련의 활동을 의미한다.
북한의 비협조는 비밀 핵개발 의혹으로 연결됐다.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 북한은 결국 7년이 지난 1992년 1월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그해 5월 IAEA에 제출한 북한의 '핵시설 및 물질에 대한 신고서'가 북핵 위기의 서막을 연 단초였다.
당시 북한은 신고서에 사용후 연료를 1990년 1차례 재처리해 약 90g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신고했으나 IAEA는 이를 믿지 않았다.
IAEA는 6차례의 임시사찰을 통해 검증한 결과, 북한이 제출한 신고서와 달리 북한이 수차례 재처리를 실시했으며 최소 148g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불일치 사건'이라 부른다.

이로 인해 북한과 IAEA의 신경전이 펼쳐졌고, 1993년 2월 IAEA 이사회가 특별사찰 촉구 결의를 채택하자 북한이 NPT 탈퇴 의사를 통보하면서 북핵 1차 위기가 시작됐다.
30여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시점에서 보면 북한은 NPT를 탈퇴한 국가로서 핵 무력을 사실상 보유한 '위험한 국가'로 존재하게 됐다.
IAEA는 2009년 4월 IAEA 사찰단이 영변에서 철수한 이후 현지 사찰활동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변 핵시설 등에 대한 가동 상태와 관찰된 활동의 특징 및 목적을 분석하는 활동은 해왔다.

함 대사는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작년 말 성명을 통해 북한의 영변 경수로 시운전 동향을 알린 것을 거론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향해 '불법적인' 핵 개발을 멈추고 IAEA의 안전조치 의무를 준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함 대사는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핵보유국으로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목소리를 IAEA 회원국들이 함께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lwt@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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