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스티그마

구릉 진 턱, 제 얼굴에도 있더라고요 / 세월 가며 깊어진 주름이어요 / 새날 오기를 기다리어요 / 눈뜨는 매일이 새날이어요 / 깊어진 골에 씨를 뿌리고 / 봄을 기다리려고요 / 꽃 필 날을 손꼽으면서요 // 더디기도 하지요 / 쓰러지기도 하겠죠 / 더러는 밟히기도 할 거예요 / 내려다보는 하늘, / 올려다보는 보는 눈길 / 피어나는 흔적이 보고 싶어요 // 여러 소리 어울리면 / 새로운 소리가 되는 줄 알았어요 / 밀려오는 파도처럼 한 소리로 오는 줄 알았어요 / 여러 소리가 하나가 되기 어려운 가 봐요 / 나뭇가지처럼 더 작은 가지로 자라 / 저마다의 목소리가 되는 걸 알았어요 // 구릉 진 턱에 바람이 불어요 / 깊어진 주름에도 파도가 와요 / 당신 손으로 턱을 만들고, 주름이 깊어갔어요 / 피려고, 덮으려 애를 쓰면 감춘 아픔이 서러워 / 녹아 내리는 골이 시려요 / 밤마다 잔가지처럼 뻗어간 사유 / 깊을수록 쩍쩍 갈라지는 몸 / 그래야 동쪽 하늘에 아침이 오곤 했어요 // 눈발이 세찰 땐 가지로 울고 / 타는 햇살엔 잎사귀를 말며 숨 쉬지 않았어요 / 하늘로 토해낸 붉게 물든 그리움은 / 내 안으로 그어낸 상처가 되어 밤이 저물었어요 / 두 팔로 안을 수 없는 큰 동그라미 / 강을 거슬러 올라 산란하는 연어 / 다른 시간을 본능처럼 낳고 있어요 / 동그라미 끝을 이어 마무리 못하고 / 잠들지 못하는 시간 가슴에 절이며 / 깊어진 주름을 쓰다듬어요
 
[신호철]

[신호철]

 
깊은 숨으로 열리는 아침을 맛있게 마신다. 하늘의 신비, 땅의 생명을 어우르며 오는 시간 아닌가. 입춘이 지나가는 아침 향기는 청명하고 맑았지만, 난 뒤를 돌아 지나가는 겨울을 보고 말았다. 별들의 수를 세며 이름을 기억했던 날들을 보았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옷가지와 그림도구를 챙겨 삼척으로 떠났었다. 이른 아침 정라진을 떠난 통통배는 울릉도를 향하고 있었다. 일행 4명은 천신만고 끝에 배에 오르고 언제라도 꺼질 것만 같은 엔진 소리를 들으며 기대와 두려움 속에 있었다.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나뭇잎처럼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배가 신기하기도 했다. 등이 검은 작은 고래가 한동안 배를 따라와 무료함을 덜어주기도 했다. 동해에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였던 윤슬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동해는 크고 막막했지만 신비롭고 자유로웠다. 사방이 물이었고 배와 그 안에 사람들은 존재도 없었다. 물에도 지탱해 주는 뼈가 있을까? 혹 뿌리가 있을까? 동해는 어린 나에게 존재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만질 수 없지만 형태로 존재케 하는 보이지 않는 엄청 큰 손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네의 작은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마주한 집들이 보이는 지척의 그곳에서도 오랫동안 행복했었다. 그곳의 물결은 구불한 선이었고 때론 수많은 점들이었다.
 
나는 지금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너른 바위에 앉아있다. 호수라기보다 바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다운타운 마천루에 접한 미시간호수가 아니라 Sheridan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다가갈 수 있는 미시간 호수. 가끔 동네 사람이 지나가다 들러 노을을 즐기는 그런 호숫가.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친구가 되기도 하는 미시간 호수. 파도를 바라보다 물결 속으로 빠져든다. 먼 곳에서 가까워질수록 형체는 크고 선명했다. 큰 삼각형 주변으로 작은 삼각 모양들이 춤추듯 촘촘히 채워져 밀려왔다. 깊은 물의 뿌리로부터 작고 투명한 포말이 몰려와 해변에 부딪혀 사라지곤 했다. 


 
나무는 가지와 잎으로 말하기보단 뿌리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삶도 보이는 것보단 감춰진 것에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도 여전히 머리가 끄덕여진다. 파도 소리가 오케스트라 음악처럼 음색의 높낮이를 가지고 하늘소리로 마감하는 호수의 하루에도, 젊은날 동해의 윤슬 속에도, 너른 바위에 앉아있는 나에게도 보랏빛 흔적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