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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동치미

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남편과 둘이 마주 앉아 무를 썰기 시작한다. 먼저 둥그런 몸체를 크게 세 등분으로 나누고, 다시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잘게 썰어 간다. 우리 부부의 손놀림은 사이좋게 크고 작은 블록 모양의 집들을 차곡차곡 짓고 있는 것 같다.
 
도마 위에 직사각형 모양의 집들이 적당히 지어지자, 그것들을 소금에 절인다. 방어 수단이 약한 생명체는 생명을 지켜내기 힘들 듯, 자연 그대로인 무도 방어막이 될 짭짤한 소금이 들어가야만 몸이 산화하여 공중분해 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으리라.
 
시원한 동치미로 탄생하기 위해서 무는 더 이상 고유의 순수성만을 고집하지 못한다. 소금과 아우러져 자신의 몸에 짭짤한 기운을 허락해야만 동치미로 새롭게 태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동치미 무에 짭짤한 간이 들어갔는지 무의 몸이 꾸들꾸들해졌다. 소금을 덮어쓴 그것은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자신을 연마시키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투명한 병에 무 조각들을 넣고 옅은 소금물을 부어 가득 채운다. 그 위에 생강과 고추, 그리고 마늘과 파와 배를 띄운다. 생강과 고추는 매운맛과 쓴맛을 내지만 삶에서처럼 면역력을 높여 주고, 파와 마늘은 필요한 향을 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거기에 단맛과 시원함을 더해주는 배까지 넣었으니 개운하고도 상큼한 동치미가 탄생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렇게 매운맛과 쓴맛, 또 달콤함과 상큼함에 향기까지 더했으니 동치미는 우리의 삶과 닮은꼴이면서 지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청량제라 하겠다.  
 
생각해 보면, 동치미 무와 같은 직사각형은 곳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하루를 마치면 직사각형 모양 집에서 직사각형 침대에 누워 달콤한 수면을 취하고, 날이 밝으면 각지고 네모난 테이블에서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가. 그것은 직사각형 모양 자체가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게 반듯한 한계를 인정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직각을 유지하기에,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까닭일 것이다.
 
동치미 무가 직사각형 모양인 이유는 균일하게 잘라 놓은 것을 하나씩 씹으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또 직사각형의 정직하고도 반듯한 각처럼 단정하고도 반듯한 삶을 만들고, 양변이 만나 만든 직각처럼 무너지지 않게 몸과 마음을 챙기라는 의미일 듯도 싶다.
 
마침내 창가 양지쪽에서 묵언 중이던 독에서 작은 기포들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동치미가 숙성하여 발효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우리 삶도 세월 속에서 숙성되고 발효되어야만 성숙하며 익어가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남편과 둘이서 담근 잘 익은 동치미를 먹으며, 문득 나의 영혼도 이 동치미처럼 삶 속에서 제대로 숙성되고 발효되어 가는지를 돌아본다.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동치미처럼 지치고 힘든 세상에 청량제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꾼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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