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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삼각관계

 
추운 정월에 친구는 가벼운 트렁크를 하나 끌고 우버에서 내렸다. LA에 사는 친구는 맨해튼에 있는 아들을 보러 왔다. 아들 아파트에서 하루 이틀을 보내더니 별안간 우리 집에 오겠다고 했다. “어디 이불집 없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이불 타령을 한다. “J의 이불이 다 해졌지 뭐야.” J는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애지중지하는 아들이다.  
 
친구를 태우고 이불집으로 향했다. 마침 극세사 이불이 세일 중이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하얀색 이불과 침대에 까는 패딩까지 세트로 샀다. “여친이주말마다 오는 모양이야. 그래서 피난 왔어.” “J의 결혼은 네가 바라던 일이잖아.” 그런데 친구의 얼굴이 심란해 보였다. 여친을 한번 보자고 했더니, 아들이 대답하지 않는다고 한다.  
 
“뭐, 강아지 때문이라고?” 나는 놀라서 물었다. 여친이 강아지를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강아지는 잠시도 제 엄마를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둘 사이에 끼어서 자기만 예뻐해 달라고 틈을 주지 않는 모양이다. 둘이 저녁이라도 먹고 들어오면 마루에 오줌을 여기저기 싸 놓고, 여친이 잠깐 밖에 나가면, 자기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J의 눈치만 본다고 한다. 강아지는 자기 엄마에게 나타난 낯선 남자가 싫고, J는 자신이 강아지 뒤로 밀리는 느낌인 것 같았다. 결국 강아지 때문에 두 사람은 대판 싸우기까지 했단다.  
 
강아지는 몸도 성치 않다고 한다. 슬개골이 탈골되어 수술해야 하는 모양이다. 지난 연말에 여친이 강아지를 데리고 한국의 부모님 집에 다녀 왔다. 본가에는 엄마의 고양이가 있다. 나이 많은 고양이가 팔랑대는 강아지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던지, 엄마가 어서 데리고 미국으로 가라고 했단다.  


 
“나 같으면 한국에서 강아지 수술도 시키고 당분간 맡아줄 텐데. 남친이 싫어한다는데.”  
 
“그 엄마도 내 고양이가 먼저겠지. 딸의 강아지보다도.” 친구의 걱정을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그러잖아도 드라마로 빗어지기 쉬운 사람들. 그 사이에 개와 고양이까지 등장하여 갈등을 보태주고 있다. 특히 요즘 젊은 남녀는 ‘밀당’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연애도 사절하는 분위기다. 결혼은 물론 자식까지 안 낳는 세상에서 개와 고양이가 호사를 누리고 있다. 친구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해되었다.  
 
차가운 뉴욕 날씨 탓인지 친구는 감기까지 걸렸다. 따끈한 만둣국을 훌훌 마시면서, 이제는 아들 집에 덜 와야겠다고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주말이 지나자, J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우버 불렀어요. 3분 후에 도착한대요.” 친구는 자신의 한두 옷가지가 든 트렁크는 이미 싸 놓았다.  
 
세탁기에 돌린 이불은 보송보송하게 잘 말라 있었다. 친구는 이불을 착착 개어서 케이스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정작 여친이 강아지를 놓고 오니까 J가 강아지를 보고 싶어 하는 거야.”
 
친구는 이제 삼각관계가 해결될 것 같다면서, 이불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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