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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이온희 전 시카고한인여성회장

박춘호

박춘호

이온희 전 시카고 한인여성회장을 알게 된 것은 그녀의 딸인 앨리슨 리를 통해서다. 앨리슨 리는 아시안 기빙 서클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들을 대상으로 기부 문화를 널리 확산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설립된 비영리단체였다.  
 
이 단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앨리슨 리를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아마도 15년도 훨씬 전의 일로 기억한다. 당시 인터뷰를 위해 시카고 다운타운 남쪽 미시간길에 있는 앨리슨 리의 집을 찾았었는데 그녀의 갓난아기를 옆에 두고 단체 설립 목적과 향후 활동 계획 등을 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집이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해 본 높은 천장의 상업용 건물을 개조한 주택이었던 것도 특이했다.  
 
이후 앨리슨 리의 기사는 중앙일보를 통해 전달됐고 이를 접한 이 전 회장을 나중에 만날 수 있었다. 이 전 회장은 당시 여성회 회장직을 역임한 뒤였고 불로초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던 때였다. 자신이 먼저 앨리슨 리의 어머니라고 소개했었다. 또 한번은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던 한인 성악가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이 전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성악가를 이 전 회장 집으로 초대했는데 나 역시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이 전 회장이 배려를 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 전 회장이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이 성악가의 무대를 접할 수 있었고 시카고에서도 무대에 선다는 소식을 듣고 자택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성악가를 후원하고 개인적인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한 적이 있었다. 이 전 회장의 남편인 이창복 안과 의사 집안 내력이 음악가였다는 점이 이런 일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 후로로 이 전 회장과는 가끔 안부도 전하고 2021년 시카고를 떠나 큰 딸이 거주하고 있는 매사추세츠의 보스턴 서버브로 이주하기 직전에는 작별 식사를 함께 하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위넷카에서 30년, 레이크 포레스트에서 16년 이상을 거주한 뒤 자녀가 있는 타 주로 이주한다고 했다. 시카고에 많은 인연과 애정을 둔 채 타 주로 떠나며 아쉬움을 남기는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다.  
 


이 전 회장은 시카고한인여성회에서 많은 일을 했다. 여성회 3대 회장과 6대 이사장직을 역임하면서 여성회가 설립 초기 한인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애써왔다. 특히 회장으로 재임할 당시 여성회 합창단을 만들어 활발한 활동도 펼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여성회 합창단은 한인사회에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리를 빛내주는 역할을 하게 됐다. 또 정기 무대도 마련해 회원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이 전회장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단체 활동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본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글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시카고 신문에 기고를 했었다. 이 전 회장은 중앙일보에도 고정 칼럼을 통해 다양한 글을 썼다. 앨리슨 리가 어머니를 위해 칼럼 모음집을 내려고 한다고 연락을 해온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중앙일보에 실린 이온희 칼럼을 읽을 수 있었다. 신문을 스크랩 해서 모아둔 이온희 칼럼 모음이었던 셈이다. 정성스럽게 신문 스크랩을 해둔 어머니와 이를 모아 영문 칼럼집을 낸다는 딸의 발상이 정겨웠다. 칼럼집은 영문으로 만들어 이 전 회장의 손주들에게도 전달하고자 한다고 했다. 할머니의 글을 통해 어머니와 할머니간의 관계를 배우고 내리 사랑의 표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값진 일임에 분명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신문 칼럼은 당시 세상을 들썩이던 묵직묵직한 시사적인 주제보다는 한인 어머니로서 딸을 키우며 겪을 수 있던 일화 등을 담고 있었다. ‘궁한 답변’이라는 글은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막내 딸 앨리스와 이 전 회장간의 일화를 담고 있었는데 보통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애정을 가득 담아 써내려갔다.  
 
30여년 전에 쓴 글이었지만 당시에도 한국 음식이 현지 사회에 소개되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이 전 회장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이 전 회장의 글은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인생 선배가 후배를 앞에 앉혀두고 이런 저런 조언을 조곤조곤 하는 것과 같은 배려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더군다나 딸이 어머니께 깜짝 선물로 영문판 칼럼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름대로 도움을 주고자 번역 작업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런 이 전 회장의 부고 소식에 아직도 마음이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 의사 노갑준의 부고 글을 썼던 적이 있었다. 인간 노갑준은 의사로, 한인 단체의 대표로 참 많은 활동을 했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면서 개인적으로도 큰 충격이었다. 그를 위한 글을 쓰면서 한인사회 발전에 기여해 온 수많은 인물들을 떠올리곤 했다. 이온희 전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 그 사회를 설명하고 되돌아 볼 수 있다. 이 전 회장과 의사 노갑준 등을 통해 시카고 한인 이민사도 상당 부분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들이 활동하고 동포 사회에 기여했던 점뿐만 아니라 이민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그 모든 일들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민자로의 삶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 지면을 통해 우리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을 이 전 회장을 통해 되새겨 본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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