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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도 전쟁도 두렵지 않다, 356년 된 화학기업의 비밀

머크의 반도체 소재 사업을 총괄하는 아난드 남비어 머크 일렉트로닉스 최고영업책임자(CCO, 수석부사장)이 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사진 한국머크

팬데믹에도, 전쟁에도, 강대국 간 갈등에도 이 회사는 당황하지 않는다. 왜? 이미 여러 번 겪었으니까.

독일 약국으로 시작한 회사가 356년간 살아남아 제약·화학·반도체까지 사업을 확장한 비결이다. 연 매출 32조원 중 6조원을 반도체용 소재로 벌어들이는 제약·화학 회사이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요 협력사인 머크 얘기다.

국내 최대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 2024’ 기조연설을 위해 방한한 아난드 남비어 머크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최고영업책임자(CCO·수석부사장)를 지난 2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인공지능(AI)이 전례 없는 시장 혁명을 만들고 있다”며 “앞으로 3~5년간, 반도체 시장은 견조하고 강력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356살 기업’의 과감한 반도체 투자
머크는 1668년에 설립, 창업자 가문이 13대 째 소유하고 있다. 회사 주식을 보유한 일가족의 대표자와 전문경영인이 함께 이사회를 꾸려 경영한다. 항암제·난임치료제 등을 만들며 반도체·디스플레이 주요 공정에 사용되는 특수가스와 소재를 공급한다.



회사는 팬데믹이 절정이던 지난 2021년 반도체 소재 사업에 2025년까지 30억 유로(약 4조3000억원)를 신규 투자하고 그중 6억 유로(약 8600억원)는 한국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남비어 부사장은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엔 시장 불확실성이 심했지만, 고객사의 흐름을 보니 반도체 시장의 장기적 성장성은 분명했고 2024~2026년경 수요가 폭증할 걸로 예상했다”라며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5년 후 기회를 놓친다고 머크 가문과 이사회를 설득했다”라고 말했다.

오래된 기업이라 보수적인 게 아니라, 도리어 장기적 관점으로 움직였다는 얘기다. 그는 “고객과의 장기 협업, 장기 투자가 머크의 DNA”라며 “이것 없이는 356년을 지속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머크는 2030년쯤 또 한 번의 대규모 반도체 소재 공급이 필요할 걸로 본다. AI가 다양한 기기에 적용되고 있으며,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HBM이나 3D 낸드 같이 메모리를 여러 층으로 쌓아올리게 되면서 필요한 소재의 종류·양이 늘어난다는 것. 남비어 부사장은 “삼성·SK하이닉스 같은 고객사들이 팹(반도체 공장)을 많이 짓고 있어서, 발 맞추려면 우리도 2년 후 쯤 새로운 투자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특수가스·전구체 직접 생산
머크는 지난 1989년 한국 지사를 세워 직접 진출했고 현재 국내 13개 사업장에 17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D램 반도체 공정 핵심 소재를 공급하는 국내 기업 엠케미칼도 인수했다.

남비어 부사장은 “머크는 한국에서 평탄화 공정(CMP)과 전구체, 특수가스 등을 생산한다”라며 “한국은 가장 풍부한 현지화 포트폴리오를 갖춘 곳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반도체 공정 핵심 소재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린스액의 한국 내 생산도 지난 2022년 시작했다.

최근 미·중 갈등으로 인해 반도체 공급망이 파편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규제를 준수해가며) 중국에서는 중국 현지 공급을 하고 있지만, 모든 걸 모든 나라에 현지화하면 비용 효율성이 떨어져 고객에게 좋은 가격을 제공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에서 자유 무역이 이뤄져 더 많은 혁신을 낳기 바란다”라고도 덧붙였다.
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에 참석한 머크 경영진들. 진 한국머크

한국 반도체 특징은 ‘속도’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사장은 머크 전시관을 찾아 남비어 부사장은 물론 머크 일가와 대화했다. 남비어 부사장은 “경 사장이 AI가 향후 10년간 반도체 업계에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될 거라고 말했다”라며 “삼성과 같이 투자와 혁신을 계속하고, 공급망과 회복탄력성을 확보해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남비어 부사장에게 ‘한국 반도체 고객사의 특징이 뭐냐’ 묻자 그는 주저없이 “속도!”라고 외쳤다. 한국 고객사는 빠른 속도와 높은 비용 효율성을 동시에 요구해 머크에도 도전이 된다는 것. 그는 “그들도 자기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기에 당연하다”라며 “머크는 장기적 관점의 R&D와 생산의 현지화로 기술과 속도를 동시에 충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이후 매년 한국을 찾고 있다는 그는 “예전에는 다국적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한국 법인·지사장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는데, 이제 대부분 한국인 리더십이 세워졌다”라며 “이번 방한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계의 자신감과 에너지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심서현(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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