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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Ennio: the maestro)

그는 리듬과 멜로디로 실타래를 풀어 영혼에 태피스트리 수를 놓는 위대한 음악가였다. 차가운 겨울, 웅장한 오케스트라 배경이 깔린 넬라 판타지아를 들으며 나의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혼이 구름을 타고 이 행성에서 다른 갤럭시로 옮겨 가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오늘은 전설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1946~2020)의 전기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보았다. 이 영화는 엔니오의 사운드트랙이 숨결처럼 흘러내리는 우아하고 클래식한 영화 ‘베스트 오퍼’와 역시 엔니오의 부드러운 OST가 노인과 아이의 우정에 스며들어 따뜻한 슬픔의 여운이 깊은 영화 ‘시네마 천국’ 감독 쥬세페 트로나토레가 2021년에 완성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창작자와 음악인으로 만나 함께 오랜 작업으로 신뢰와 우정을 쌓은 쥬세페 감독의 수고와 헌신은, 트럼펫 연주자였던 엔니오 아버지에게 엄격하게 받았던 어린 시절 음악 공부와 그의 성장과 창작의 예술혼으로 점철된 생애와 생전 그와 인연을 맺어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존 윌리엄스, 세르지오 레오네, 한스 짐머 등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실어 생생함을 전달하였다.  
 
실험 정신이 강한 근면한 천재음악가, 주옥같은 음악 400~500곡을 남긴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의 이해와 업적에 쥬세페 트로나토레 감독은 따뜻한 마침 점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그가 남긴 세상의 명성과 업적을 떠나 사뭇 개인적인 감성으로 그는 내게 아주 특별하다. 내게, 음악은 기억을 환원하는 가장 큰 울림통의 매개체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엔니오 모리코네를 떼어놓을 수 없다.  
 
아버지는 영화광이셨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의 뿌리는 영화다. 아버지는 오케이 목장의 결투, 황야의 무법자 같은 서부영화를 좋아하셨다. 저녁노을이 산 중턱에 걸리면, 멀리서 ‘따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 들려온다. 손톱 밑이 까맣게 되어 땅바닥에 주저앉아 친구와 공기놀이하던 조그만 계집아이였던 어린 나는 고무신을 달빛 마당에 날리며 넘어질 듯 미닫이 방문을 연다. 혼이 빨려 들어가는 휘파람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산 능선을 등에 지고 뽀얀 흙먼지를 날리며 나타나는 카우보이, 허리에 찬 쌍권총, 검게 그을린 얼굴에 상대를 녹일 듯 바라보는 눈빛, 입에 삐딱하게 물려 있는 시가. 화면에 몰입하던 나는 숨이 아찔해져 나도 모르게 힐끗 아버지를 바라보면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게리 쿠퍼, 존 웨인 같은 배우의 이름을 알려 주셨다.  
 
나는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야 끝없는 나락으로 몰고 가던, 그 음악이 엔니오 모리코네의 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을 빨아들이는 그 야성은 나의 감성을 길렀고 근원을 알 수 없는 몽환의 노스탤지어와 감성을 붙들고 헌책방을 어른거리며 방황하며 나는 성장하였다. 엔니오의 음악은 문학과 예술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한 최초의 불씨였다. 그의 음악은 한 편의 시(詩)였고 그는 나에게 별을 보여준 연금술사였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영화를 보며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에게 남기고 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영혼의 선물에 감사의 기도로 엎드린다.  
 
이 새벽, 아버지와 엔니오 모리코네를 기린다. 그리고, 지상에 남은 넬라 판타지아! 환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의 발길은 아직, 시리게 푸르다.

곽애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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