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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국인의 교육열, 건강한가?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명예교수·전 총장
우리나라 국민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학령인구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초중고 사교육비는 매년 증가하여 2022년에는 26조원에 달했다. 한국사교육연구협의회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총지출액은 전 세계 사교육비의 4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 세계 인구의 1%도 안 되는 국가에서 사교육비는 25% 정도를 지출한다는 것은 엄청난 교육열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교육열이 우리나라가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교수는 2015년 세계교육포럼에 참석하여 “한국의 경제발전은 전례가 없는 성과이고, 교육이야말로 경제발전의 연료 역할을 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고(故) 루커스 교수는 인적 자본론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즉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산 종사 인력의 생산성이 큰 역할을 하는데, 한국은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인적자본이 급속히 증가하여 초고속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4·19혁명 등의 민주화 운동도 대중교육에 의한 의식 확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교육열이 국가 발전 기여했지만
열기의 주요 원천은 개인 출세욕
대입 공정성 확보 사회적 이슈로
교육적인 가치와 충돌 문제 심각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 교육에 대해 여러 불만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을 나와도 쓸모있는 인재가 없다”는 기업들의 불만이다. 왜 세계적인 교육열을 가진 국가에서 세계적인 인재를 키우지 못할까?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한국의 교육열이 개인의 출세욕에 기반하여 건강하지 못하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학벌이 사회적 성공의 길이었기 때문에, 오로지 일류 대학 입학이 공부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입시가 출세의 관문이 되면서 대학입시에서의 ‘공정성 확보’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물론 ‘공정성’은 중요한 가치이고 경쟁이 심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입시제도로 들어가면 기계적인 ‘공정성 확보’가 ‘교육적인 가치’와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수능에서의 서술형 문제의 출제다. 학생들의 사고력, 표현력을 함양하는 데에 있어 지금 수능의 5지선다형 문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기에 프랑스의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는 주관식으로만 출제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채점의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서술형 문제가 수능에서 계속 배제됐다. 또 다른 예는 고교 내신의 절대평가다. 지금의 상대평가는 같은 반 친구들을 경쟁자로 만들어 협동 정신을 기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많은 교육학자는 절대평가를 주장하여왔다. 그런데 절대평가를 하면 고교별 성적 부풀리기를 막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직도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고교 학점제가 시행되면서 교육부는 고교내신 절대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여러 번 공언하였으나 최근 발표된 2028년 대입제도에서도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병기하는 형태로 후퇴했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취지의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표준화된 시험(수능) 성적이라는 단일한 잣대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다양한 교내외 활동을 평가하는 잣대가 주관적이고 부모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비난이 커지면서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는 내용이 대폭 축소되었다. 결국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북돋워 준다는 교육적 가치는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여론에 밀려 희생되었다.

사실 한국의 역대 대학입시 제도는 이처럼 ‘공정성 확보’와 ‘교육적 가치’ 사이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적당히 타협하면서 형성되어왔다. 최근 발표된 2028년 입시제도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에는 공정성 확보에 좀 더 중점이 주어졌다. 수능에서 선택과목 간의 점수 차이가 문제가 되자 사회와 과학의 선택과목을 모두 없애고 고1 과목인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으로 대치했다. 또한 사교육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심화수학도 배제했다. 이에 대해 대학교수들은 학생들의 필수 학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대학들은 학생들의 학력을 평가할 수 있는 추가적인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이에 따른 사교육비 부담은 젊은이들이 출산을 주저하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과거 국가의 발전을 이끌었던 교육이 이제는 국가 소멸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입시제도가 단순히 교육제도가 아니기에, 교육부의 노력만으로는 이를 해결하기는 힘들고 근본적으로 사회적 격차와 경쟁을 완화하는 정책 등이 필요하다. 결국 대통령의 일이고, 교육에 대한 국민의 인식변화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의 교육열이 단순한 출세욕이 아니라 미래사회의 진정한 인재를 키우는 방향으로 한 단계 성숙해야 입시제도도 선진화하고 우리 자손들이 진정한 참교육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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