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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예정된 세금 전쟁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가 반드시 해내야 할 시대적 과업을 세 개 정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세금의 정상화를 포함할 것이다. 한국의 조세 현실은 한마디로 누더기 상태다. 민주공화국에서 세금을 왜 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도 없고, 건드렸다가 손해볼까 봐 지나간 정부들도 모두 눈감아버린 채 땜질 처방만 해온 데다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시장에 반하는 이념적 정책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수단으로 세금을 휘둘렀으니 누더기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종부세와 법인세, 금융투자소득세, 주식양도소득세 등 일련의 감세 정책이 추진돼 왔다. 문재인 정부보다는 나은 방향이라고 하겠으나 문제는 원칙이 애매하고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야당은 포퓰리즘이라 공격하고 보수언론에서도 부자 감세라는 문제 제기가 종종 나오는 형국이다.

조세원칙 모호, 사회적 합의 결여
민주공화국 지탱하는 것은 세금
누가 왜 얼마 내야 할지 설명돼야
이 문제 답 없으면 재도약은 요원

3년 남은 다음 대선은 본격적으로 세금을 둘러싼 전쟁터가 될 것이다. 이유는 이런 것들이다. 첫째, 인구위기의 가장 냉정한 결과들은 돈과 힘으로 나타난다. 세금과 안보라는 얘기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군대 갈 사람이 없어지니 병역면제자나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할 상황이 될 수 있고, 군복무기간이 길어지거나, 모병제로 전환하거나, 용병을 도입하는 방안도 결국은 검토하게 될 것이다. 좋다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을 뿐, 피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세금도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란 다른 말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반면에 세금의 혜택을 받아야 할 고령 인구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늘어나고 있다. 지금의 20~30대가 40~50대가 되었을 때 집중적으로 세금 부담을 떠안게 될 텐데, 과연 그들이 동의할까. 세금 전쟁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

둘째, 대기업·부자 감세라는 편향된 논리에 대응논리가 없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23년 OECD 세입통계를 보면 전체 세입 중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보다 30% 높고, 재산세는 250%에 달한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49.5%로 미국 37%와는 비교도 안 되고 OECD 최고 수준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대기업과 부자는 적어도 세금이라는 측면에서 OECD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기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근로소득자 가운데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과세미달자는 37%에 달해 OECD 평균의 세 배 가까이 된다. 이런 팩트에도 대기업·부자 감세라는 감정적 공격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기업과 부자가 세금을 제대로 안 내는 것이 문제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본인의 소득이 적을수록 이런 응답의 비율도 높아진다. 세금 안 내는 사람이 많이 내는 사람을 비난하는 구도인 셈이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동료시민’을 내건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민주공화국에서 세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한다. 감세는 둘째 문제다. 세금이란 무엇인지, 따라서 누가 왜 얼마만큼 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걸 설명해야 피할 길 없는 보편증세의 길이 열린다.

셋째, 야당의 차기 대선후보는 누가 되든 세금 포퓰리즘을 대대적으로 들고나올 것이 분명하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지만, 진짜 세금 포퓰리즘은 대기업과 부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집중 과세해 서민에게 나눠주겠다는 좌파 포퓰리즘이다. 한마디로 남의 돈으로 내 정치 하겠다는 얘기인데, 기본소득을 내세워 대권 직전까지 갔었던 이재명 대표가 다시 후보로 나설 경우에는 물론이고 설사 다른 후보가 나선다 하더라도 학습효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민주당이 같은 날 발표한 저출생 대책을 보자. 모든 신혼부부 10년 만기 1억원 대출, 첫 아이 낳으면 무이자 전환, 둘째 낳으면 5000만원 원금 탕감, 셋째 낳으면 1억원 전액 탕감이다. 게다가 자녀 1명당 수당과 펀드 등 각 1억원을 지원한다. 거기에 들어가는 세금은 누가 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포퓰리즘의 핵심은 돈 뿌리기다. 그렇다면 누구 정책이 진짜 포퓰리즘인가. 민주당은 21대 국회 내내 과반을 차지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재정지출 증가를 막는 재정준칙은 끝내 통과시키지 않았다. OECD 국가 중에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튀르키예뿐이고, 따라서 남의 돈으로 내 정치 하겠다는 세금 포퓰리즘을 막을 방법도 없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공화국에서 세금이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의하고, 그 정의에 따라 누가 왜 얼마만큼 내야 하는지 설명하고, 그에 따라 정상적인 조세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결과가 감세이든 증세이든 상관없다. 이걸 못한다면 몇 년간 반짝 감세해 봐야 결국은 세금전쟁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고, 나라의 재도약은 요원해질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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