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기관도 ‘부익부 빈익빈’…규모 큰 곳에 기부금 97% 쏠림
대구의 한 사회복지관은 최근 노인 무료 급식 제공 대상을 인접동에 거주하는 노인으로 한정했다. 원래 복지관을 방문하는 노인이라면 누구나 무료 급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사업비로 쓸 기부금이 갈수록 줄어들면서다. 매일 400여명이 찾는 무료 급식 사업을 하기 위해선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부족해 예산의 절반 이상은 기부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이곳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거치며 복지 수요가 늘었지만, 불경기에 정기 후원은 줄어드는 추세”라며 “한 시간씩 대중교통을 타고 찾아온 분들을 돌려보내는 게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라고 말했다.고금리 장기화에 기부 손길이 줄어들면서 복지기관 사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드비전·유니세프·굿네이버스 등 잘 알려진 대규모 복지기관으로 기부금이 쏠리면서다.
반면 대규모 복지기관(3개월 합산 기부액이 2억이 넘는 기관)은 기부금 증감률이 대부분 +(플러스)를 나타내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2021년 1월 기부금을 1로 놓고 지수화하면 지난 3년간 매월 기부금은 1을 웃도는 수치를 나타냈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 각종 매체를 통한 광고에 나서고, 팔찌 등 다양한 후원 기념품을 내놓으며 다양하게 모금 활동을 해온 영향이다. 지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대형 기관으로 기부금이 몰리고, 이것이 정기 후원으로 이어지는 영향도 컸다.
실제로 전체 기부금 중 대규모 기관으로 간 기부금 비중은 2021년 96.9%, 2022년 97.1%, 2023년 97.2%로 매년 늘어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개인 기부액은 10조7000억원으로 전년도보다 4000억원 늘었는데, 이는 결국 대규모 복지기관에 쏠린 고액 기부가 전체 수치를 끌어올린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선 이 같은 양극화가 ‘지역 밀착형’ 복지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생활이 힘든 지역 주민들을 발굴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동네 소규모 복지관의 역할인데, 자체 기부금이 줄어들면 사업 영역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한 사회복지관 관계자는 “급속한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고보조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정기 후원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다”며 “지역 기반의 기업이나 교회에 기부를 요청해도 이미 대형 기관에 후원했다는 대답만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노연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규모 기관들이 살아남지 못하면 민간 복지 서비스 분야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또 “소규모 기관들은 모금을 활성화할 투자비용이 부족해 양극화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기부금이 쏠려 있는 대규모 기관들이 나서서 소규모 기관들의 역량을 키우고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효정(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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