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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철의 장군' 해임설…"젤렌스키, 잘루즈니 인기에 짜증"

러시아와 2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차기 권력투쟁 성격의 내분에 휩싸였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여름 세계적 관심사였던 대반격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러시아의 공세에 맞서고 있는 상태다. 미국·유럽연합(EU)의 지원마저 난항을 겪는 가운데, 전쟁을 지휘하는 최고 지도자간 균열까지 표면화되자 우크라이나의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군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가운데)의 모습. AFP=연합뉴스

3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디언,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등은 4명의 우크라이나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2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발레리 잘루즈니 군총사령관에게 ‘군사 고문’ 역할을 제안하며 사퇴를 종용했지만,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이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고문 역할을 맡는 것과 관계없이 총사령관직에선 무조건 해임될 것”이라고 잘루즈니에게 통보했다고도 보도했다. 다만 최근 두 사람의 갈등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져 잘루즈니의 축출 시점은 다소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잘루즈니 해임 임박설’은 지난 29일 현지 언론과 익명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소문이 난무하자 같은날 저녁 세르히 니키포로우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대변인이 직접 “해임설은 사실 무근”이라고 공개 부인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그의 해임안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을 소식통으로부터 확인했다고 전했다.



"대선 앞둔 젤렌스키, 잘루즈니 인기에 짜증"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 군 전체를 책임져왔다. 침공 당시 국제사회는 ‘세계 2위’ 러시아군에 우크라이나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거라 여겼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잘루즈니의 지휘 하에 수도 키이우를 성공적으로 방어했고 러시아가 점령했던 하르키우와 헤르손에서도 반격에 성공했다. 예상치 못한 우크라이나군의 선전에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철의 장군’으로 불리며 인기가 치솟아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까지 꼽혔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불화설은 전쟁 초반부터 불거졌지만, 특히 지난해 여름 세계적 관심사였던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지지부진하게 끝나면서 갈등이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잘루즈니 총사령관에게 공격을 지속하라고 다그쳤고,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러시아군이 이미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한 상태라 공격을 지속하면 자국군의 희생만 커진다고 반박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가 군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의 생일을 맞아 권총을 선물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이코노미스트 기고문을 통해 “교착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가 더 발전된 무기를 공급받지 못하면 결코 아름다운 돌파구((beautiful breakthrough)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낙관적 전망을 일축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착상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를 징계했다.

가디언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유일한 대권 도전자’로 간주하고, 그의 높은 인기를 짜증스러워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현재 계엄령에 따라 중단된 대선을 강행할지에 대해 고심 중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더선과의 인터뷰에서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겨냥해 “전쟁 지휘관이 정치나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아직까지 정치 입문이나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바 없다.

현재 잘루즈니 총사령관의 인기는 상승세인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KMIS)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의 92%는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신뢰한다고 응답했고, 72%는 그의 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2022년 84%에서 지난해 62%로 떨어졌다. 키이우인디펜던트가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두 사람이 대선에서 맞붙을 경우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아주 근소한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잘루즈니 총사령관의 후임으로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 지상군 사령관, 키릴로 부다노우 군사정보국장이 경쟁 중이라고 전했다. 두 사람 모두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란스카 프라우다는 이미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부터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건너뛴 채 일부 군 사령관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가 미 육군 유럽 및 아프리카 사령관인 대릴 윌리엄스 장군(오른쪽), 안토니오 아구토 중장(왼쪽)과 함께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잘루즈니 해임, 러시아에 놀아나는 것"
FT는 실제로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해임될 경우, 우크라이나의 서방 파트너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EU로부터 1000억 달러가 넘는 군사 및 재정 지원을 기다리는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600억 달러(약 77조3000억원)를 지원하는 예산안을 제출했으나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혀 의회에 계류 중이다. EU 역시 다음달 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에 4년간 총 500억 유로(약 71조6000억원)를 지급하는 장기 지원 패키지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가운데)의 모습. AFP=연합뉴스

영국 채텀하우스 싱크탱크의 우크라이나포럼 책임자인 오리시아 루체비치는 뉴스위크에 “잘루즈니의 해임과 관련된 일련의 정보들은 매우 충격적”이라며 “우크라이나 대중은 젤렌스키 정부에 잘루즈니 축출을 원치 않는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의 단결을 내부에서부터 흔들려는 러시아의 시도를 고려할 때, 잘루즈니 총사령관에 대한 공격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형수(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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