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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 공약'에…"늙었단 체감 안 돼” 노인 연령 상향도 불붙나

지난 11일 서울 탑골공원 무료 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이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공약을 쏘아 올린 뒤 대한노인회와 연일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지난해 이후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노인 연령 상향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고령층 반발, 연금·정년 등과 맞물린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지만, 빠른 고령화에 대응할 연령 조정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혁신당은 지난 18일 노년층에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 대신 연간 12만원의 교통카드를 지급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그 후 "지하철 적자 누적"(이 대표), "이준석식 갈라치기"(김호일 대한노인회장) 같은 공방이 불붙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구 등에서 불거진 무임승차 손질 논란의 '2라운드'인 셈이다. 경제·복지 측면서 파급력이 큰 만큼 4월 총선까지 불씨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소모적인 무임승차 논쟁보다 노인 연령이 본질적 문제라는 지적이 대두한다. 65세로 굳어진 기준을 그대로 두면 이러한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단순히 노인 교통 혜택을 축소하냐, 아니냐로 가는 건 문제를 지나치게 축소한 것"이라면서 "무임승차 건은 노인 간 경제적 격차, 복지의 지속 가능성 등으로 연결되는 만큼 결국 연령 상향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노인=65세' 공식은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의 경로우대에서 시작됐다. 법률마다 노인 기준이 다른 편이지만, 주요 복지 제도는 대체로 65세 이상을 기준으로 삼는다. 지하철 무임승차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40년 넘은 기준도 흔들리고 있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노인의 52.7%가 '70~74세'를 노년이 시작되는 연령이라고 밝혔다. 2022년 이뤄진 서울시 조사에서도 서울 거주 노인들이 본 기준 연령은 평균 72.6세였다. 경기도에 사는 박모(64)씨는 "내년에 65세가 되지만 늙었다는 체감이 되진 않는다. 누가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싫다"면서 "노인 기준을 68세나 70세까진 올려도 될 거 같다"고 말했다.

가팔라지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년층 부양 등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건 연령 상향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말 주민등록인구 통계에서 70대 이상(631만9402명)은 20대(619만7486명)를 첫 추월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당 고령 인구인 노년부양비는 2024년 27.4명에서 2072년 104.2명으로 올라갈 전망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이에 따라 정부도 노인 연령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3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미래 세대 부담 등을 이유로 해당 기준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노인의 사회 참여 욕구, 건강·소득 수준 변화 등을 고려해 사회적 논의에 착수하겠다"면서다. 그러나 후속 논의 속도는 더딘 편이다. 저출산위 관계자는 "무임승차 등 사회적 관심이 큰 이슈라 꾸준히 챙기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진전은 없다"면서 "이해관계자 입장이 다른 만큼 단기간에 답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다. 우선 혜택이 줄어드는 고령층의 반발을 무시하기 어렵다. 최진호 아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노인 연령 상향은 민감하니 단계적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무임승차 제도 조정도 재정에 얼마나 도움 되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신중론을 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인 노인 빈곤율·자살률도 부정적 요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년 보고서를 통해 "사회보장제도의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건 이러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또한 노인 연령 상향 시 기초연금부터 노인 일자리, 무료 예방접종에 이르는 보건복지 제도뿐 아니라 고용률 등 각종 통계도 수정해야 하는 작업이 대기하고 있다.
종로3가역 승차권 구매기에 뜬 우대용 승차권 발권 버튼. 연합뉴스

노인 기준 조정에 나설 경우 함께 풀어야 할 난제도 있다. 노후 소득과 직결된 연금과 정년이다. 현재 만 63세에 받기 시작하고, 2033년 65세로 늦춰질 국민연금 수급 기준은 노인 연령 상향 시 서로 어긋날 수 있다. 만 60세인 정년도 그대로 두면 일자리 공백에 따른 '소득 절벽'을 피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연금·노동개혁 등으로 연결된다. 이들 개혁이 제 속도를 못 내는 가운데 노인 연령 조정까지 통합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앞으로는 노인 혜택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국민연금 수급 연령은 70세로 높이고, 법적 정년은 아예 폐지하는 걸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임승차 공약 논쟁으로 논의의 장이 다시 열린 만큼 총선 이후에도 사회적 합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훈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노인 연령대에 속속 진입하고 있어 노인 연령 조정은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입법조사처는 "노인 연령 조정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지만, 전 세대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종훈.왕준열(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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